나를 위하는 연습

by 꼬망

집 근처 아트홀 공연장이 있는데 우연히 발레공연이 있어서 예매했다. 아직은 어린 둘째 아이를 데리고 아담한 공연장에서 현란한 조명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발레리나와 댄서들이 나와서 진행하는 공연이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추는 탭댄스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리 찢기 등 고 난이도의 동작을 해내는 댄서의 모습을 보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이 시간에 문화생활을 누리는 내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공연에 점점 빠져들었다.


아이들을 한창 키울 때는 난 늘 여유가 없었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나갈 때도 세 살배기 둘째 아이가 문 앞에서 엉엉 우는 바람에 어디든 함께 가야 했다. 그래서 외출은 거의 꿈꿔본 적이 없다.


나갈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애가 어려서 못하지 뭐. 정신없고 힘들 게 어떻게 나가. 그냥 있어야지’라는 마음가짐이 깊게 자리 잡았다. 이상하게도 안 되지, 못하지라는 생각들에는 더 안 되고, 못하는 일들로 가득했다. 그럴수록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 탓이라는 원망으로 가득 찼다. 그런 시간이 지속할수록 나의 시야는 점점 좁아졌다.


밖으로 나오는 게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나는 왜 그토록 버겁다고 생각했을까?


화려한 조명을 보고 아이와 함께 웃으며 보낸 오늘 공연이 기억에 남았다. 아이의 엷은 미소가 붉어진 조명에 비췄다. 가슴 한편으로는 과거에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해주지 못하고 “못할 거야” 단정 지었던 생각들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육아에서 오는 피로감 보다, 갈수록 나에게 인색해지는 마음이 날 더 주눅 들게 했던 것은 아닐까. 새로운 공연을 보고, 멋진 볼거리에 눈 호강을 하는 나를 보면서 선명히 느끼게 됐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집스러운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끔 해줘야 한다. 참다 터지는 삶보다 나를 돌보는 쪽이 더 나은 인생이니까.


어릴 때는 만나자는 약속이 가득했고, 눈을 돌리면 새롭게 볼 수 있는 주변 환경이 늘 펼쳐졌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는 동안은 스스로가 애쓰지 않으면 나의 삶을 그 누구도 바꿔주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얘들한테는 신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면서 정작 무기력한 모습의 표정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런 무기력한 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의 삶이 나와 다르길 바라는 것이야말로 욕심이 아닐까.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데 나는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걸까?


어둡고 칙칙한 얼굴에 눅눅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의 불안을 품은 채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런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들이 행복을 만끽하는 인생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보아야겠다. 피곤할 때는 나를 먼저 챙겨야 가족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일상의 삶에서 자주 잊었다.

나를 돌보는 연습. 날 위하는 시간을 작은 것부터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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