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병원 진료가 예약되어 있어서 간식을 챙겨놓고 밖에 나왔다. 큰아이 학원이 늦을까 봐 병원에 도착해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준아. 오늘 늦지 않게 가. 간식은 식탁에 올려놨으니 챙겨 먹고 알았지?” “아.. 네네 알아서 할게요.”
간호사 선생님의 호출 목소리가 들리자 부랴부랴 전화를 끊었다.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학원 선생님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어머니, 준이가 아직도 안 왔네요. 확인 부탁드릴게요.” 지금 15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갔다고? 메시지를 보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에서는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다. 전화번호를 누르려는데 화가 나서 손이 떨렸다. 선생님의 메시지. “어머니 준이 지금 왔어요. 이따가 전화드리겠습니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 황급히 수화기를 닫아버렸다.
열불이 나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화를 삭이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온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열심히 먹었다. 더 이상의 잔소리도 싫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생님의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 준이가 예전에는 숙제도 열심히 해왔는데 요즘은 하나둘 빼먹어요. 좀 살펴주셔야 할 것 같아서 전화드려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을 많이 못 썼는데 요즘 저도 사실 아이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드네요. 아이 스스로 마음에 없는데 무엇으로 얘를 끌고 가야 할지 모르겠고요...”
아이에 대한 지적을 받으니 말끝이 흐려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 정말 힘드실 것 같아요. 준이 같은 아이들이 잘 격려해 주면 열심히 더 잘할 수도 있는데 그걸 맞추기가 어렵죠.” 선생님의 공감 어린 목소리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이들 키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모르고 결혼했네요. 그땐 왜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요?”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고 차분한 선생님은 “맞아요. 제가 그래서 딩크족이잖아요. 전 아이들 감당이 안 돼요. 어머니”
화통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멈추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 마음이 조금씩 진정됐다. 선생님께 버릇없이 얘기한 것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아이에게 차분하게 얘기했다.
“이럴 거면 그냥 학원 다 그만두자. 할 필요 없을 것 같아. 너에게 쓰던 학원비 열심히 하겠다는 동생 밀어주게. 굳이 못 하러 제대로 하지도 않을 걸 이렇게 에너지를 쓰니.” 무표정한 내 모습에 흠칫 놀란 아이는 눈치를 자꾸 살핀다. “아…. 엄마. 학원 친구들 만나고 좋은데…. 공부도 너무 못하기는 싫어요.”
전에는 학원 그만두고 싶다 해도 내가 듣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정색한 엄마의 모습이 적응이 안 됐는지 자꾸만 나를 살폈다.
할 거면 군소리 말고 해. 아니면 그냥 다 그만둬. 더는 얘기 안 해.
뒤돌아서 서늘한 뒷모습으로 설거지를 하는 엄마를 보며 주섬주섬 챙겨서 방으로 들어갔다.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보니 웬일로 앉아서 숙제하고 있네? 이미 11시가 넘었다. 전에는 시간이 늦으면 그만하고 일찍 재우곤 했다. 이제는 그러기도 싫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던가.’ 하니 아이가 노트북을 켜고 단어장 숙제를 하고 있었다.
새벽 한 시. “엄마. 숙제 다 끝났어요. 학원숙제 미루지 않고 잘 다닐게요.” 쥐구멍 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아이 눈에는 다크서클이 이미 가득 내려왔다.
“들어가서 자. ”무심하게 툭 내뱉었지만, 아이의 처진 어깨가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아이의 취침이 시작되자 이젠 나도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