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분석: 야마우치 카즈토요(공명의 갈림길)
일본 전국시대에는 야마우치 카즈토요(1546 ~ 1605/카미카와 타카야)라는 무장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안 알려진 인물이다. 임진왜란과 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 안에서도 큰 공을 세운 적은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은 2006년 일본 NHK의 대하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의 주인공이다. "역사적으로 고만고만한 인물이었던 카즈토요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모두 관여했다면?"이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난세 속에서 어떻게 한 무사가 만들어지고 소모되는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재구성으로 느껴진다.
카즈토요는 본래 살상을 싫어하고 솔직한 성격이었다. 몇 백 석 규모의 하급 무사일 때까지만 해도 그 성향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어떻게든 무마되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2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1번째. 이것은 몰락한 가문을 부흥시키기 위한 행동이다. 2번째. 이 행동은 주인의 명령으로 행해진 것이다. 그래서 나한테는 책임이 없다. 이 둘은 카즈토요를 지탱해준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출세가 시작되면서 이 명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카즈토요는 지위가 높아지며 더 이상 단순한 명령수행자로서 남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여전히 그 큰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뀐 현실은 목적과 전혀 맞지 않는 수단을 요구했다. 자신의 주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게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타네자키에서의 학살 사건(47회)이다. 카즈토요는 일령구족을 스모 대회를 핑계로 불러 모아 철포로 몰살시키는 잔혹한 결정을 내린다. 이는 그의 성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잔혹한 선택이었다.
카즈토요의 아내 치요(나카마 유키에)가 “이 일 때문에 가문이 욕을 먹으면 어쩌냐”고 두려워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치요는 잠시 카즈토요를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자신의 잔혹한 행동을 단순히 ‘주인의 명령’이라고 환원할 수도 없게 되었다. 높아진 지위는 자신이 주인과 가문을 내세우며 무마했던 책임과 모순을 드러낸다. 카즈토요는 그 대가를 잠깐이나마 지불했다. 난세는 인간의 내면을 찢어 놓는 구조적 압박이었다. 카즈토요마저 그것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카즈토요의 출세는 축복이라기보다 부담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도 어느정도는 느꼈을 것이다. 도사(지금의 고치현) 20만석이라는 파격적 보상조차 그에게는 새로운 불안 요소였다는 걸. 도쿠가와 이에야스(니시다 토시유키)는 이를 통해 시코쿠·규슈·츄고쿠 쪽 적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걸. 난세는 사람을 선택하게 만들고, 선택은 다시 의심을 낳는다. 카즈토요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 계산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카즈토요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내 치요의 도움 덕에 이러한 난세를 돌파할 수 있었으니. 그렇게 능력보다는 운이 더 많은 역할을 한 그의 인생은 화려함과 동시에 공허함을 품고 있다. 공명의 갈림길은 이 모순을 통해 한 무사가 시대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모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줄서기를 보면 한심함보다 연민이 먼저 찾아온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세가 만든 가장 평범하고 잔혹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