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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늘 Apr 24. 2023

좋아요, 구독을 갈구하는 "관심경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Opinion]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을 통해서

퍼스널 브랜드가 중요한 시대, 개인 모두가 사업자가 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다양한 플랫폼과 커뮤니티의 등장으로 전문적인 지식 혹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언뜻 인간에게 ‘자유’를 보장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말하면, 무한한 시간과 정보가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하면, 그 책임이 오롯이 (의지가 부족한)  ‘나’에게로 향한다는 뜻이다.



퍼스널 브랜드화 되어버린 ‘나’의 정체성


23살이 되던 해, 지난 3년간 쉼 없이 보냈던 대학 생활을 뒤로 하고 휴학하기로 했다. ‘쉴 휴(休)’라는 말처럼 쉼을 통해 재정비해야 했지만, 모든 시간이 자원이고 재원인 현대인에게 계획 없는 휴학은 사치였다. 1년 동안 ‘나’를 알아보자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1월 1일 새해를 시작으로 ‘자기소개’하는 영상을 매달 찍자. 그리고 SNS에 나만의 결로 완성된 사진, 글, 사색 등을 업로드하자.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 찾기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나’라는 정체성은 어떤 일관된 논리와 정의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이었다. 끊임없이 자라고 변하는.


SNS에 콘텐츠를 업로드하면서도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올리는 게 아니라, 남을 의식하여 ‘나’라는 사람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일관된 특성에 꿰맞춘 콘텐츠만을 업로드했다. 즉, '나'에 대해 알기도 전에 이미 남들에게 보일 '나'라는 꾸며진 정체성을, SNS 플랫폼에 전시하고 있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를 팔든, 무엇을 팔 때는 ‘브랜드’라는 일정한 콘셉트를 띠고, 명확한 메시지를 지녀야 한다. 과거와 달리 더욱 세분된 타깃층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는 디테일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소비자에게 어필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취향 저격만 할 수 있다면, 전보다 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면에 숨겨진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인식한다면, 마냥 장점만 있지는 않다. 개인화, 개성화, 퍼스널 브랜드화.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는 누구나, 유명해진다면 그 어떤 것도 팔 수 있는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이러한 모습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자유’의 모습일까?




생산성을 거부하고 잠시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이러한 사회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제안하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How to do nothing: Resisting the Attention Economy』(김하현 역, 필로우, 2021)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은 끊임없이 관심을 요구하는 관심 경제로부터의 탈출 방법이기보다는 현대의 ‘생산성’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생산적이지 않은 것, 쓸모없는 것들은 버려지고 논리와 일관성의 원리로 세상은 끊임없이 재편된다. 그러나 실재 세계의 삶은 위선과 무지, 비논리로 가득하고 이를 직시하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관심경제: 인간의 관심을 희소자원으로 규정하고 이윤 창출에 활용하는 경제. 소셜미디어가 관심경제의 대표적 사례이며, 이들은 중독을 일으키는 각종 기술을 사용해 최대한의 관심을 끌어내고자 한다- 옮긴이) 출처: 제니오델, 위의 책, p.18


무엇을 위한 성공이며, 무엇을 낳는 생산성인가? 끊임없이 ‘나’를 착취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낳은 퍼스널 브랜드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를 알기 위해 했던 일련의 행동과 계획이,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를 팔고 이에 파생되는 가치를 획득하기 위함이 아닌가?


전문적인 기술과 정보가 힘이 되었던 지난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플랫폼에 정보를 공유하는 행동들이 이제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식의 ‘거래행위’가 되어버렸다. 이와 같이 온라인에 최적화된 삶의 방식이 실재 삶에서도 지속된다면, 행위 이면의 맥락은 제거되고 피상적인 결과만 남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현대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드라마 에피소드가 있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 3 '추락 (nosedive, 2016)’ 이다.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더 좋은 평점을 주고받기 위해 손가락을 날리는 행위는, 마치 현재 SNS상에서 손가락 하나로 쉽게 감정이 표현되는 맞팔, 리트윗 등의 모습과 유사해 보인다.


*아래 드라마 내용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디바이스를 통해 평점을 주고받는 사회. 평점이 높은 사람에게 평점을 받으면 더 큰 폭으로 평점이 오른다. 평점에 따라 빌릴 수 있는 렌터카도, 출입할 수 있는 건물도 다르다. 인위적인 미소를 애써 짓는 주인공 레이시는 4점 초반 평점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더 좋은 집을 사기 위해, 어렸을 때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 (평점이 4점 후반대인) 나오미 결혼식 축사 부탁에 응한다. 그러나 결혼식에 가는 길 뜻밖의 사고를 당한 레이시의 평점은 2점대로 내려간다. 레이시의 축사를 통해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곁들인 완벽한 결혼식을 원했던 나오미는, 평점이 내려간 레이시에게 결혼식에 오지 말라고 통보한다.


그 길로 레이시는 결혼식에 가서 나오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모조리 내뱉고,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 유치장에 갇힌다. 화장이 번져 기름진 얼굴의 레이시는 몸에 맞지도 않은 드레스를 벗어 던진다. 브래지어 차림의 그녀 눈앞에 보이는 건, 아주 느린 속도로 흩날리는 먼지들뿐. 레이시가 그들로부터 얻고자 한 건 과연 무엇일까? 4점 후반대의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 같은 그들의 환호와 인정? 레이시는 결혼식 가는 길 우연히 얻어 탄, 트레일러 운전사의 "결국 뭘 갖고 싶어서 그러느냐"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글쎄요. 만족감?


주변을 둘러보고 내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요?


마음 편하게 숨을 내쉬면서. 기분이.. 여하간 그 상태는 아직 멀었어요. 


그때까지는 평점에 매달려야 해요. 


모두 그래야 해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잖아요.”


단지 그녀는 마음 편하게 숨을 내쉬고 싶었고, 답답한 것에서 해방이 되어 만족감을 얻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왜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서, 가지지 못한 것에 이렇게나 열을 올리게 만드는 것일까. 그래 엿 같지만,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다행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의 저자, 제니 오델은 다음 두 가지 무기를 우리 손에 쥐여준다.  



관심경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첫째, 회복의 시공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과 장소를 마련한다. 가끔은 기회를 놓칠 필요도 있다. 24시간 내내 어떤 기회가 있을지, 호시탐탐 각종 플랫폼을 주시하지 말고 자기를 돌봐야 한다. 자기돌봄은 방종이 아닌 자기 보호이다. 그러나 이 자기돌봄이 무언가 시작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돌봄'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며, 시간을 흘려 보내야한다.


둘째, 깊이 있게 듣는 능력이다. 의사소통 하기 위한 소셜 플랫폼은 실제로 듣기를 장려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지나치게 단순한 반응과 제목 한 줄을 잃고 판단하는 행위를 장려한다. SKIP의 늪에 빠져 피상적인 판단은 지양하고, 깊이 있게 들어야 한다. 저자가 인용한 책의 구절을 재인용해 보자. 자연의 음향 풍경을 기록하는 음향 생태학자 고든 햄튼의 말이다. “정적은 무언가의 부재가 아니라, 모든 것의 존재다.” 


위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시간을 내어, 우리는 마주 앉아 대화해야 한다. 깊이 있게 듣고, 같은 장소에서 우리는 내뱉어야 한다. 맥락이 잘린 SNS상의 수많은 피드를 뒤로 한 채, 현재 여기 있는 누군가와 "싫다, 아니다"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 마치 드라마 <추락 (nosedive,2016)>에서 레이시가 맞은편 남자와 마주 서서 하는 대화처럼 말이다. *직접 감상을 통해 꼭 확인해보길!


출처 : nosedive (2016) - imdb


*참고문헌 :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How to do nothing: Resisting the Attention Economy』, 김하현 역, 필로우, 2021 





출처 : https://www.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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