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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늘 Oct 10. 2024

당장 현재의 행복 VS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행복

[Review] 마이아트뮤지엄 <툴루즈-로트렉 : 몽마르트의 별> 리뷰

천부적인 재능은 진짜 저주에 가까운 건지도 몰랐다. 무릇 많은 사람들이 천재를 동경하며, 재능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당신에게 그런 재능이 없었으면 그렇게 집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보통의 삶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아주 보통의 삶을." 


툴루즈 로트렉.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인 그는 ‘난쟁이 화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귀족 출신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유전병으로 인한 신체장애는 그를 그림에 더욱 집착하게 만든 결핍이자 원동력이었다. 


나는 그의 그림을 잘 알았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짧은 생애였지만 워낙 많은 수의 작품을 남겼고, 든든한 후원자 어머니 덕분에 후대에 잘 전달되어 내려온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그동안 툴루즈 로트렉의 외피만을 좇았던 것을 깨달았다. '난쟁이 화가, 현대 그래픽 포스터의 아버지, 유머러스한 비운의 천재 화가'. 그의 그림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당대의 쓸쓸함이 담겨있고, 물질주의, 계몽주의 이면의 향락, 쾌락, 화려한 예술과는 대비되는 퍽퍽한 삶. 그 레이어가 너무나 다양해 이를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석판화라는 그 얄팍한 질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처음에 가볍게 보고서는 잘 와닿지 않는다. 그저 '어? 세련되었네. 예쁘다.' 그 평가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끝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시작해서도 안 되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마이아트뮤지엄'에서 툴루즈 로트렉 전시가 열리고 있다.


물랑 루즈의 영국인 신사, L'Anglais au Moulin Rouge, 62.8 ×  48.4 cm, 석판화, 1892 


백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매력적이다. 세련되고 유머러스하다. 어릴 적 장애로 인해 바깥 생활을 거의 하지 못한 터라 아버지에게는 아들 취급을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로 툴루즈 로트렉은 화가로 클 수 있었다. 


키가 작았던 그는 오롯이 그림에만 매진했다. 어떤 유파, 당대 이론에 휩쓸리지 않고 마치 일기를 쓰듯 매일매일을 기록했다. 그의 그림에서 어떤 사상이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직 로트렉의 시선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시선의 깊이는 얄팍하지 않다. 그리고 대담했다. 강한 필체와 과감한 생략과 선택을 통해서 알 수 있듯 로트렉은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방향에만 몰두했다. 



로트렉 그림에는 수많은 인물이 담겨있다. 약간은 관조적으로도 보인다. 언뜻언뜻 보면 그림 속 인물들의 인상이 다 비슷해 보인다. 로트렉이 유지하는 특유의 필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기시감이 남았다. 아무리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의 일기를 계속해서 보다 보면 이게 저거 같고, 저게 이거 같은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림 속 대상들에게 적당한 거리감을 두는 것 같기도 하다.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혹은 일부러 각 개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철저히 로트렉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적당한 거리감은 오히려 관찰하기가 좋다. 관계가 너무 가까울수록 감정도 이미지도 왜곡되기 마련이다. 로트렉은 적당한 거리감을 통해 그들의 실존을 포착한다. 


그러나 한편, 깊숙하게 정이 통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환희는 그의 작품에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한 에피소드가 있다. 스스로조차 자신이 없었던 로트렉을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가 있다. 르누아르, 드가 화가뿐 아니라 음악가 에릭 사티 등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아티스트였다. 그런 그녀의 재능을 로트렉이 처음 알아보았고, 화려한 외피에 집중했던 다른 화가와 다르게 로트렉은 처음으로 가장 그녀다운 그림을 그려주었다. 위태로운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수잔 발라동'이라는 이름을 선사해 주었던 사람도 로트렉이었다. 


수잔 발라동은 자살 소동을 일으키면서까지 로트렉에게 구혼하지만 로트렉은 끝까지 거절한다. 자신의 아이도 유전병이 걸릴까 걱정된다는 이유로. 



왜 그는 끝끝내 자신에게 일상의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그의 그림에서도 느껴지지만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재능이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그는 보통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림으로써 인정받고 유명해진 그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는 그림은 곧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시선을 유지하려면 그는 절대로 깊숙이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런 면이 그를 상업적으로 성공한 화가가 되게 했을지도 모른다. 성실하고 떨어지지 않는 테크닉, 귀족의 자기 연민이라는 차별화된 정체성, 변주되지만 변형은 되지 않는 그의 일관된 철학. 상업적인 작가가 지니는 필수적인 조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걱정하는 만큼 자신의 행복을 걱정했으면, 그는 그림을 어떤 '수단'으로서가 아닌 진짜 그 자체로 '그림'으로 대했을 수도 있다. 사랑에 대체제는 없다. 직면할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환희를 마주할 수 있다. 로트렉 그림 속 인물들의 인상이 비슷해 보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지독한 자기 연민이 투영된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툴루즈 로트렉 그 자신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안에, 로트렉 같은 면이 있기에 동조했을 뿐이다.


자유로운 코끼리, 서커스에서 연작, É léphant en liberté, Au Cirque, 24.5 ×  18.4 cm, 석판화, 1899



 앙리 드 툴루즈 로 트렉, Henri de Toulouse- Lautrec


그의 작품이 여전히 인간적이라면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묘하게 현대인들의 초상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풍요로운 세상에서 자란, 자유와 사랑을 꿈꾸는 기질의 현대인들이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우리는 각자의 상처를 하나씩 이상은 가지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결핍 혹은 원동력으로 삼아 우리는 자유로움을 꿈꾼다. 


그러나 결국 로트렉은 잦은 음주와 무분별한 성교제로 인한 병으로 36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상처는 직면하지 않으면 치유될 수 없다. 딱지가 지고 새 상처가 나기 위해서는 상처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원동력 삼으면, 새로운 딱지가 아물기는 만무하다.


로트렉은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화가로 기억된다. 나는 생각했다. 과연 현재 자신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과, 후대에까지 전달되는 유산을 남기는 행복 중 비교한다면 어떤 게 더 좋을까? 저울질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시대가 현대로 올 수록 우리는 당장 현재의 행복도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렇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현대인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면서까지 많은 행동을 하지만 과연 정신적으로 풍요로울까? 새로운 딱지가 아물 수 있도록 우리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멀어질 필요도 있는데. 우리는 문제해결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치유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로트렉은 정말로 현대인과 닮아있다. 





출처 : https://www.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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