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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늘 Oct 30. 2024

장꾸미 가득한 큰아버지 매력을 지닌 거문고

[Review] 수림뉴웨이브 국악독주회 : 김화복 <현금현금>

오늘은 좀 비장하게 자리 선정을 해보았다. 수림뉴웨이브 두 번째 거문고 공연 관람이었기 때문이다. 악기를 조금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마음에 연주자 가장 우측 맨 앞줄에 앉았다. 덕분에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오늘의 주인공 김화복 연주자 분이 무척이나 긴장을 한 듯 보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국악 독주회에다가 자연음향으로 공연장을 꽉 채운다는 게 퍼포머에게도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특히 ‘거문고’라는 악기는 마치 비올라와 같아 독주하기는 쉽지 않은 포지션이기도 하고, 수많은 청중들이 ‘당신의 연주를 들어보겠노라’하고 앉아있으니 얼마나 긴장되겠는가. 


무대 시작 전, 거문고와 타악기


하, 나에게도 거문고는 너무 어렵다. 가까이서 보니 매우 느슨한 줄을 막 손으로 땡겼다 밀쳤다 하는데 저기서 도대체 어떻게 소리가 나는고? 또 ‘술대’라는 것은 가야금, 아쟁과는 다르게 어떤 역할과 매력을 지니는지, 그 조그만 녀석이 거문고의 정체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박우재 연주자처럼 거문고를 술대가 아닌 활로 그으면 거문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릴 적 우리는 서양악기를 배울 기회는 많았다. 태권도 하는 것처럼 또래 아이들은 피아노나 플롯, 바이올린 등 악기 하나씩을 필수 교양처럼 했었다. 물론 나는 운이 좋게도 장구까지는 했던 것 같다. 다른 언니가 하는 가야금도 눈길이 갔지만 언감생심이었다. 거문고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판타지가 점점 쌓였던 것 같다. 저 어디 사랑방 넘어 시조를 읊으며 뜯고 있을 것 같은 기품 있는 악기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런 기품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의 제목은 <현금현금現今玄琴>. ‘지금의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뜻으로 김화복 연주자가 행하는 모든 예술 활동의 모토이기도 하다. 김화복은 다음 네 곡을 차례로 연주했다. 


1. 하현도드리
2. 령초 - 작곡 : 김화복
3. 9 to 5 - 작곡 : 이경은/ 타악 : 최영진
4. 현금현금 with 가야금 - 편곡 : 김화복 / 가야금 : 김혜림 / 타악 : 최영진


사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많았다. 연주자 분이 긴장한 탓인지, 내가 맨 앞줄에 앉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모르게 감정적인 부분을 잘 전달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감정이 다가 아니고, 기술이 받쳐줘야 하는 일이지만 국악 특유의 그 여백이 ‘여백’이 아닌 ‘공백’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세 번째 곡부터는 타악 연주자(최영진)와 함께 했는데, 그즈음부터는 다행히 마음이 좀 편해지신 것 같았다. 또한 수림뉴웨이브 특성상 토크쇼도 곁들이는데, MC인 ‘말 거는 사람’ 분도 약간은 긴장은 하신 것 같아서 묘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수림뉴웨이브 관람은 김화복 공연이 네 번째였는데, '말 거는 사람'이 매번 바뀌었다. 하지만 그에 따라 편차도 크다. 특히 '질문'이 다소 전형적인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부끄러울 수 있지만 그들 가슴 깊이 궁금한 것은 우리 관객도 궁금하다는 사실을 열렬히 말해주고 싶다. 


현금현금現今玄琴 (왼쪽부터 가야금 : 김혜림, 거문고 : 김화복, 타악 : 최영진) / 사진=수림문화재단 제공


마지막 곡 ‘현금현금’은 가야금, 타악기와 함께한 다채로운 곡이었다. 가야금, 장구와 함께하는 제대로 된 거문고 산조는 처음이라 집중해서 들었던 것 같다. 곡을 연주하기 전 즉흥곡이라 연주자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셔서(?) 약간은 걱정했는데, 무사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확실히 호흡을 오래 맞춰본 곡 같았다. 관중석에서도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거문고는 확실히 이상한 매력이 있는 악기이다. 늘어질 듯 늘어지지 않는 선율, 가끔씩 탁탁 때리는 묵직한 한 방. 높은 음과 낮은 음에서의 다른 음색, 그리고 음량 폭도 큰 것 같다. 은근 다양한 면에서 변화무궁한 매력이 있다. 마치 겉으로는 엄숙해 보이지만 은근 장꾸미 있는 큰아버지를 닮았달까?

 

수림뉴웨이브를 통해서 국악을 입문했다. 장르적으로 확실히 특색 있다. 하지만 국악을 오래 연구하고 공부한 연주자들에게는 '현대성'이 또 고민인 듯하다. 사실 연주자에게는 음악은 도구일 뿐, 결과물이 국악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하는 음악이 이 시대에 맞느냐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하는 것 같다. 자신이 잘하고 고민하는 바가 시대랑 딱 맞으면 모르겠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은 기획자, 매개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고유함을 잘 발현하고 나아갈 수 있게 지원해 주는 한편,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단순히 '현대성'이 아닌 현시대를 구성하는 한 퍼즐조각에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를 읽어내는 문제이다. 누구나 예술을 하는 시대가 올 텐데, 그러면 그때에 예술의 진정성을 잘 따지는 것도 기획자, 매개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들도 한편으로 예술을 하는 창작자이기도 해야 하며 또 한편 관객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도 생각한다.

 

수림뉴웨이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실험들이 앞으로의 수림문화재단의 행보에 더욱굳건함을 다져주는 일이라 확신하며 글을 마친다.  




*수림아트에디터 수퍼(SOOP-er) 2기

*본 리뷰는 수림문화재단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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