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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늘 Oct 25. 2024

독야청청 獨也靑靑 양금의 소리

[Review] 수림뉴웨이브 국악독주회 : 최휘선 <라이브 인 라이프> 

가족들을 버리고 줄 맨 앞에 앉았다. "양금"이라는 평생 처음 보는 악기를 가까이 보기 위해서였다. <양금>은 국악기 유일의 타현악기이다. 금속줄을 채로 때려서 소리가 나는 악기인데, 마치 대시보드 같은 큰 사다리꼴 모양의 악기가 연주자 앞에 놓여있었다. 딱 봐도 까다롭고 예민한 악기처럼 보였다. 그 얇은 대나무 채가 그 얇은 줄을 정확히 쳐서 소리를 내다니. 정작 최휘선 자신은 둥글둥글한 사람이라, 예민한 악기 양금을 만나 차분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줄 3개가 한 음을 낸다고 한다. 그래서 조율에도 퍽 시간이 걸린다. / 사진=수림문화재단 제공


양금(洋琴)은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에서 온 악기이다. 피아노의 전신이었던 중동의 악기가 중국을 통해, 한반도까지 전해온 것이다. 피아노도 속을 들여다보면 해머가 줄을 때려 소리를 내는데, 같은 원리이다. 이번 최휘선의 양금 공연은 수림뉴웨이브 시리즈 중 세 번째 관람이었다. 


다른 공연보다도 글을 쓰는 데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세 번째까지 감상하고 나니, 국악에 대한 나의 빈약한 감상이 한계가 드러나는 것 같고, 진심으로 이제는 ‘국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림뉴웨이브를 통해 처음 국악공연을 관람하는데, 기획 특성상 개인 연주자에 특화된 독립된 곡을 감상하다 보니 '양금이란(각 악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을 하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시야를 넓히고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매달 공연하는 ‘정오의 음악회’ 시리즈를 감상하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오의 음악회’를 통해서 정통국악에 대한 정수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국악을 들을 땐, 뭔가 여지가 많은 수묵화 같은 공간 즉 어떤 여유랄까? 급하게 박자를 쫓지 않는데 뭔가 박자가 딱딱 맞는, 그런 여유감이 있었다. 그러나 국악관현악단 공연은 아무래도 서양식 오케스트라 구성이다 보니, 서양음악에서 느껴지는 합리적 정신의 뉘앙스가 더 강했던 것 같다.


여하튼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국악에 대한 감상평은 더더욱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웠다. 감상평이라고 할까 주관적인 감성조차도 활자로 적어내는 데는 고민이 들었다. 피상적이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최휘선의 양금 연주는 가히 최고였다. 그래서 펜을 드는 데 더욱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감상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최휘선의 연주를 잠깐 들을 수 있었지만, 양금 소리는 금속성이라 그런지 현장에서 듣는 소리랑 너무 달랐다. (양금 소리는 기회가 되면 무조건 현장에서 듣기를 바란다)


일단 ‘양금’은 두 손 모두를 사용하여 멜로디가 진행되는 것이, 전에 수림뉴웨이브에서 감상했던 악기 피리와 거문고라는 악기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었다. 그리고 소리가 챙, 챙 거리는 게 무더운 여름, 살짝 시원하고도 고요한 종교 시설 안에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악기로 연주할 때 이~잉, 이~잉 하는 음들이 많다고 느끼는데, 양금 주법은 금속 줄을 때리는 기법이라 국악기의 특유의 비브라토는 적었지만 소리 자체에 묘한 울림감이 있어 국악기의 또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생각했다. 또한 채의 종류에 따라 소리는 천차만별이었고, 기타 몸체를 치는 것 마냥 양금의 나무로 된 부분도 타악기처럼 칠 수가 있어 다양한 변주가 가능했다. 즉, ‘양금’이라는 악기는 다른 악기보다 독주에 용이한 악기 같았다. 마치 피아노처럼 말이다. 그래서 들어보면 딱히 다른 악기와 협연하지 않아도, 오롯이 독야청청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수림뉴웨이브 <라이브 인 라이프> 최휘선 연주자 / 사진 = 수림문화재단 제공


또한 양금소리가 화려해지면 무척이나 화려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최휘선 연주자를 닮은 양금 연주에서는 전통적인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최휘선은 ‘산조’라는 즉흥의 끝을 밀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이번 공연 제목도 <라이브 인 라이프>였는데, 정형화되지 않은 즉흥의 양금 연주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아까 언급했던 뭔가 여유에서 오는- 박자를 갖고 노는 국악의 본질을, 최휘선은 담고자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 '즉흥'이라는 것이 제멋대로라는 느낌이 아니고, 자신을 초월하는 무아지경에 가까웠다. 함께 공연을 관람한 아버지가 취미로 비올라 연주를 하면서 박자 맞추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시곤 했는데, 최휘선의 연주를 보고는 정말 놀라워했다. 어느 순간 경지에 다다르면 박자를 쫓아가는 게 아닌, 박자를 이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국악’하면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인상들을 가지고 있는데 빠를 때는 어떤 랩소디보다도 막 달려가는 게 저 세상 쿨함이 아닐 수 없었다. 텍스트힙처럼, 언젠가는 국악힙의 길이 열릴지도. 잠깐 사설을 덧붙이면, 수림뉴웨이브 국악공연을 처음 관람했을 때부터 든 몽상이지만, 국악의 박자나 장단이 저세상 리듬이어서 재즈바같이 국악바BAR를 만들면 너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 말고 막걸리 마시면서 듣는 산조는 어떤 기분일까? 솔직히 국악기는 자연 음향으로 들어야 하는데, 그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소규모 공간이 생기면 당장이라도 찾아갈 것 같다.  


이제 수림뉴웨이브 마지막 공연만을 앞두고 있다. 10월 24일, 31일 이렇게 두 공연이 남았고 필자는 31일 타악기 공연을 예매해 두었다. 그때 쯤이면, 국악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게 좀 수월해질라나? 아니면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국악 너무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종종 나는 서양화보다는 동양화에 마음이 끌리곤 했는데, 국악도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다양한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수림문화재단의 국악공연이 더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림아트에디터 수퍼(SOOP-er) 2기

*본 리뷰는 수림문화재단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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