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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Sep 28. 2022

계란볶음밥만 잘 만드는 남자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넌 꼭 요리할 줄 아는 남자랑 만나라."

  고추장, 된장도 직접 만들어 먹을 정도로 요리의 고수인 엄마는 요리 못 하는 남자와 결혼한 게 천추의 한이다. 내가 봐도 아빠는 요리에 있어서 좀 너무하다. 장난감, 전자제품, 가구 등 세상의 모든 물건을 고칠줄 아는 사람이 요리에서는 완전 꽝이다. 라면 물을 맞출 때조차 눈빛이 흔들리는 아빠는 평생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으며 살았다.


  배달은 커녕 식빵 한 봉지 집어올 빵집도 변변치 않던 시절, 엄마는 집에서 면을 뽑아 칼국수를 끓이고, 밥통에 계란빵을 쪄서 가족들을 먹였다. 평소에 엄마는 식구들을 먹이는 일에 대해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이런 걸 집에서 만든다고? 싶은 메뉴들을 뚝딱 만들어내놓고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면 비상사태였다. 만들 줄은 모르고 먹을 줄만 아는 입이 셋이나 있으니 엄마는 아픈 몸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나와 동생에게는 어리다는 핑계가 있었으나 아빠에게는 면죄부가 없었다. 엄마는 아무말 없이 밥상을 차려놓고, 한숨을 길게 쉰 후 이부자리로 가 등을 돌리고 누웠다. 식사를 준비한 사람이 한 숟가락도 뜨지 않는 밥상에서 밥을 먹는 건 몹시 마음이 불편한 일이었다. 어린 나에게도 가시방석이었으니, 아빠는 아예 가시를 씹어삼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아빠는 계란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빠가 부엌에서 뭔가를 한다 싶으면 여지없이 계란찜이 밥상에 올라왔다. 엄마가 만드는 것에 비해 국물이 많고, 파가 잔뜩 들어간 아빠의 계란찜은 엄마가 아프거나, 아빠와 싸워서 심기가 불편할 때 맛볼 수 있는 메뉴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빠가 인생에서 도전한 요리는 계란찜, 딱 하나였다. 계란말이나 계란국 정도로 변주가 가능할 수도 있을텐데 꿋꿋이 계란찜만 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대부분의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게 된 이후, 아빠는 다시 요리를 멈췄다. 아빠는 계란찜 하나만 십년 넘게 만들다 사라진 요리계의 원히트원더였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14년동안 자취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취기간과 요리실력 사이에 어느 정도의 비례관계가 성립한다는 걸 친구 남편들을 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해물탕, 월남쌈, 갈비찜... 집들이에서 역대급 음식 라인업으로 찬사를 받았던 친구 R은 사실 남편이 다 만든 음식이라고 고백했다.

  "해물탕까지 직접 만들었다고?"

  우리가 입을 떡 벌리자 R은 목소리를 더 낮추며 소곤소곤 말했다.

  "오빠가 자취를 오래해서 음식을 잘 하는데, 자기가 했다고는 말하지 말래."

  이 무슨 우렁각시 같은 상황인가? 아내의 친구들에게 해물탕을 만들어주고, 그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는 남자라니!


  요리 마스터인 R의 남편은 자취경력이 16년이라고 했다. 자취 16년차에 해물탕을 뚝딱 만들 수 있다면 자취 14년차인 남자도 가정식 백반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두번째 데이트에서 직접 만들었다며 블루베리스무디를 텀블러에 담아온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나는 우렁각시를 만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의 자취방에 처음으로 간 날,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가스레인지 화구 위에 택배상자 같은 게 올려져있고, 주변으로는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었다. 가스가 연결되어 있기는 한걸까 의심스러운 풍경이었다.

  "가스레인지를 잘 안쓰나봐."

  "가스레인지는 쓸 일이 없지. 전자레인지만 써."

  "왜?"

  "요리를 안 하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그에게 물었다. 라면도 안 끓여먹어? 나 라면 안 좋아해. 그럼 밥은 사 먹어? 아니, 나 밖에서 혼자 밥 먹는 거 별로야. 내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라면도 싫어하고, 혼밥도 싫어하는 사람이 요리를 안하면서 어떻게 14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의 생존비결은 엄마였다. 나의 엄마처럼 평생 식구들의 삼시세끼를 위해 부엌에 서던 그의 엄마는 서울에 떨어져 사는 아들을 위해 14년동안 택배로 반찬을 보냈다. 냉장실에는 그의 엄마가 만든 고추튀김과 진미채가, 냉동실에는 봉지봉지 얼려져있는 국이 있었다. 나를 설레게했던 블루베리스무디조차 엄마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엄마가 아침에 입맛없을 때 갈아먹으라고 블루베리를 얼려서 보내주셨더라구. 그는 엄마가 보내준 국을 데워서 밥을 먹고, 엄마가 보내준 블루베리를 갈아먹으며 14년을 살아온 남자였다.


  자연스럽게 결혼 후 요리 담당은 내가 되었다. 요리책과 인터넷 없이는 요리를 할 수 없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재미있어도 혼자서 삼시세끼를 담당하는 건 좀 힘들었다. 신혼 때는 어른 둘이 먹을 밥만 하면 되니까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고 아이 밥과 어른 밥을 쌍으로 해대려니 가끔은 밥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갇혀서 밥하고 치우기를 반복하다가 열이 뻗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야! 넌 요즘 대체 뭘 해먹고 사냐?"

  기대했던 답은 "나도 밥 때문에 미치겠어."였다. 하지만 친구에게서는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남편이 요리 다해서 밥 안 해."

  남편이 유튜브를 보고 요리를 시작하더니 빠에야까지 만들어 내놓는단다. "나는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도 몰라..."하며 친구가 수줍게 웃을 때, 나는 질투로 온몸이 녹아내릴 뻔했다.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비교하지 말자, 비교하지 말자...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날 우리는 대차게 부부싸움을 했다. 빠에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할 줄 아는 요리가 열 개, 아니 적어도 다섯개는 있어야 내가 아파도 편히 누워있지 않겠냐, 다그치는 내게 그는 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계란볶음밥을 만들었다. 계란, 굴소스, 기름.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라 그런지 첫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훌륭했다. 딸이 계란볶음밥을 흡입했다. 나는 쌍엄지를 치켜들고 칭찬했다. 자신감을 얻은 남편은 그후 수시로 계란볶음밥을 만들었다. 내가 외출해서 딸과 둘이 밥을 먹어야 할 때, 내가 아파서 밥을 할 수 없을 때... 자신이 밥을 해야 할 상황만 되면 계란볶음밥을 만드는 남편을 보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엄마의 팔자를 물려받았구나. 메뉴만 계란찜에서 계란볶음밥으로 달라졌을 뿐, 모든 게 똑같았다.


  한 가지 다른 게 있긴 했다. 다른 요리를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아빠와 달리 나의 남편은 계란말이를 시도해보긴 했다. 내가 쓱쓱 마는 걸 보더니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도전한 메뉴였다. 하지만 남편이 만든 엉망진창 계란말이를 보고 딸은 "이게 뭐야. 안 먹어."라고 했다. 대실패를 경험한 후, 남편은 다시 계란볶음밥의 세계로 돌아갔다. 하도 많이 만들어서인지 이제 계란볶음밥 하나는 정말 기똥차게 잘 만든다.


  그렇게 요리계의 두번째 원히트원더가 될 것 같던 그가 나의 생일날 수줍게 냄비를 내밀었다. 미역국이란다. 뚜껑을 열어보니 미역국이 들어있긴 한데 뭔가 이상했다. 국이라는 건 건더기보다는 물이 좀 더 많은 음식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가 끓인 미역국은 국물이 자작한 찌개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설레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를 위해 한 숟가락 가득 떠서 맛을 보았다. 예상대로 몹시 짰다.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유튜브 보고!"

  그가 본 유튜브에서는 미역국을 오래 끓여야 맛있다는 말만 해주고, 국이 쫄지 않게 물을 수시로 넣어줘야 한다는 말은 안 해줬나보다.


  밥을 크게 한 술 떠서 미역국에 담갔다가 먹었다. 남편이 끓여준 최초의 생일국은 많이 짭짤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찌개를 먹는 셈 치고 밥을 많이, 국을 조금 떠서 먹었다. 남편이 할 수 있는 요리가 다섯 개만 되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계란볶음밥에 이어 두번째 요리로 인정을 해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며 한 그릇 다 먹었다.  시원한 물 한 컵을 들이키고 나니 그제야 간이 딱 맞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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