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이 시작됐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던 날, 육아휴직수당이라는 이름으로 98만원이 들어왔다. 처음 3개월만 이 정도로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저 돈의 절반 정도가 나온단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니 한숨이 나온다. 가족은 하나 늘었는데 수입이 대폭 줄었다.
안 먹고, 안 입고,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140만원이다. 대출이자, 월세, 관리비, 보험료, 통신비, 교통비, 청약……. 우리가 벌어온 돈을 퍼가는 곳이 이렇게나 많다. 여기에 먹고, 입고, 살림하고, 아기 키우는 데 필요한 지출들을 대충 더해보니 아껴써도 적자를 면하기 힘들겠다. 누구 하나라도 아프거나 경조사가 있는 달은 무조건 마이너스다.
붓고 있던 적금 3개를 모두 깼다. 더 이상 적금을 넣을 능력이 없다. 2개는 예금에 묶어두고, 1개는 비상금 통장에 넣어두었다. 예금에 묶어둔 돈은 아마도 보증금을 올려주거나 대출을 갚는 데 쓰게 될 것이다. 비상금 통장에 있는 돈은 적자인 달마다 야금야금 쓰게 되겠지.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했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 부부가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거의 없으니 줄일 수 있는 돈은 식비 뿐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당분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얼려놓은 고기 몇 덩어리가 있고, 엄마가 담가주신 각종 김치가 있다. 산후조리 때 먹던 미역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김과 참치캔도 몇 개 굴러다닌다.
냉장고 파먹기 식단을 짜보았다. 일단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시작하고, 그 다음은 미역국이다. 미역국을 한솥 가득 끓이면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엔 김에 밥? 김치참치찌개? 있는 식재료로 돌려막기를 하다보면 일주일쯤은 식비를 지출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야무진 꿈은 3일 만에 깨졌다. 의욕에 불타올라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끓였지만 두번째 메뉴인 미역국은 끓이지 못했다.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하루는 지루하고 심심하면서도 바쁘다.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운 후에야 어른들의 일을 할 수 있다. 그 때 보글보글 국이라도 끓여놓는다면 매우 좋겠다만 그건 이상일 뿐이다. 현실 속의 나는 아기가 잘 때 같이 널부러져있다. 불 앞에 서서 국물에 뜬 고기기름을 건져내고 있을 체력도, 의지도 없었다.
결국 치킨을 시켰다. 김에 밥을 싸 먹거나 라면에 밥을 말아먹어도 되긴 했다. 하지만 종일 아기를 보면서 지친 몸이 맛있는 걸, 아니 사실은 맥주를 원했다. 입으로는 치킨을 뜯으면서 돈을 아껴야된다고 구질구질하게 굴었더니 남편이 말했다.
“치킨 먹을 돈 아낀다고 부자되는 거 아니야.”
사실 먹는 돈까지 아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까지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우울했다. 아기를 낳고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취미생활도 다 접었다. 쇼핑도 안 하고, 여행도 안 간다. 여기에서 먹을 것까지 참으면 우울증으로 빠지거나 이상한 데에서 폭주할 지도 모른다. 인간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 부부의 행복을 위해 식비는 건들지 않기로 합의를 했다.
그렇다면 다른 데서 아껴야 한다. 샴푸를 두번 눌러쓰던 걸 한번만 눌러써야 할까, 볼일 보고 닦을 때 쓰는 화장지를 몇 칸 더 줄여야 할까.
아기에게 쓰는 돈을 줄여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지출내역을 살펴보니 딱히 줄일 게 없다. 매달 분유값 10만원, 기저귀값 5만원이 꼬박꼬박 나가는 건 불가침의 영역이다. 젖병이나 아기 전용세제, 로션, 연고 같은 걸 사는 데도 자잘자잘 돈이 들긴 하지만 그 외에는 지출이 많지 않았다. 옷은 출산선물 받은 걸로 버티고 있고, 모빌이나 장난감도 선물받거나 얻은 게 많았다.
이제 곧 이유식도 시작해야 하고, 간식도 먹을테니 딸의 식비도 늘어나긴 할 거다. 선물 받은 옷들이 작아지면 계절마다 옷도 사줘야 할테고, 책이나 장난감도 얻은 걸로만 버틸 수는 없을 거다. 남들 하는 걸 다 해줘야 한다거나 모든 걸 가장 좋은 걸로 사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딸에게 뭐 하나 사주면서 벌벌 떨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돈이다. 더 벌지 못한다면 더 아껴써야 한다. 휴직 기간에는 더 벌 수 없으니 치킨 두 번 먹을 것은 한 번으로 줄이고, 아기 옷은 크게 사서 오래오래 입히는 식으로 살아야 한다. 아끼고 아끼면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세 식구 못 살 것도 없다.
하지만 저축이 0원인 상태로 계속 살 수는 없다. 다른 건 다 접어두더라도 집이 문제다. 비슷한 평수에 사는 친구는 2년 만에 보증금을 4천만원 올려줬다고 했다. 우리도 보증금을 올려주거나, 어쩌면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 저축이 0원인 외벌이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복직만이 답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맞벌이를 하려면 딸은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어린이집은 언제쯤 갈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딸이 아기 티를 벗을 때까지만이라도 내 품에서 키우고 싶은데 그러기 쉽지 않겠다.
자식을 키우고 싶어서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을 키울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에게 딸을 맡겨야 한다. 그게 참, 마음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