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육아 24시

by 꼼지

엄마가 된 이후 나의 하루는 전적으로 딸에 의해 결정된다. 딸의 패턴이 어떻게 굴러가느냐에 따라 매우 힘들기도 하고, 조금 덜 힘들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안 힘든 날은 없다.


딸은 보통 8시쯤 일어난다. 새벽 2-3시쯤에야 잠드는 나는 조금만 더 잤으면 싶다. 하지만 딸은 늦잠을 자지 않는다. 가끔 출근하는 남편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놀고 있는 딸을 보면 한숨이 난다. 회사도 안 가고, 학교도 안 가는 애가 왜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걸까.

한번 일어난 딸은 아무리 토닥거려도 다시 자지 않는다. 받아들여야 한다. 하루는 시작됐다. 찬물을 한잔 들이켜고 분유를 탄다.


밤사이 뚱뚱해진 기저귀를 갈며 딸에게 쭉쭉이 체조를 해주고 나면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딸은 모빌매니아였기 때문에 딸이 모빌을 보는 동안 나는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었다. 가끔은 커피도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뒤집기 기술을 터득한 이후, 딸은 모빌에 전혀 관심이 없다. 끊임없이 뒤집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뭔가를 하려고 한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얼굴을 땅에 쳐박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구슬프게 울어댄다. 모빌과 함께 하던 태평성대는 끝났다. 딸과 뭔가를 하며 놀아줘야 한다.


동물 울음소리가 나는 책을 딸에게 들이민다. “크아앙! 사자다. 아이, 무서워~”하면 딸은 깍깍거리면서 좋아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동물이 6개 밖에 없다. 6개의 동물을 세 번쯤 보여주면 딸은 지루해한다. 시간은 5분도 채 지나지 않는다.


비닐봉지에 바람을 불어넣어 딸의 손에 쥐어준다. 비닐봉지 풍선을 흔들면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딸이 그걸 흔드는 동안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역시 5분을 못 간다.


머리에 손수건을 뒤집어쓴다. “까꿍!”하면서 손수건을 벗어젖히면 딸은 웃기도 하고, 정색하기도 한다. 반응이 좋으면 손수건을 뒤집어썼다 벗어던지기를 반복하며 신나게 놀지만 정색할 때엔 또 다른 놀이를 찾아야 한다. 딸랑이를 흔든다. 딸은 딸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삐약삐약 병아리~” 노래를 불러본다.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듣는 것 같기도 하다. 하품이 난다.


잠시 정신줄을 놓고 있다보면 딸은 침을 뱉기 시작한다. 백일을 넘어가면서 딸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다. “아푸우우- 아푸우우-”하면서 침을 뱉어대는데 입술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침이 턱을 타고 줄줄 흐른다.


지원군이 필요하다. 그럴 때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머리를 말리다가 영상통화를 받아준다. 엄마는 아기 어르기 선수여서 영상통화만으로도 아기와 잘 놀 수 있다. 나는 휴대폰을 딸 얼굴 앞에 대 준 채 잠깐 쉰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해야 받을까 말까한 딸이었는데 아기를 낳은 이후 엄마에게 스토커처럼 전화를 해 댄다. 나 대신 딸에게 까꿍거려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 나는 매일 전화를 할 것이다.


영상통화 찬스가 끝나면 아기띠를 하고 집안을 맴맴 돈다. 화장실에 들어가 물도 틀어보고, 옷장 문도 열어본다. 하지만 24평짜리 집 구경도 금방 끝난다.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며 오가는 차들의 색깔을 딸에게 알려준다. 우리나라 차들은 거의 다 흰색, 아니면 회색, 아니면 검정색이어서 별로 재미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동태를 딸에게 샅샅이 보고한다. “저기 언니가 뛰어간다. 오빠도 오네~”


그렇게 버티다보면 딸이 하품을 하는 순간이 온다. 첫번째 텀이 끝나간다는 신호다. 잽싸게 딸에게 쪽쪽이를 물리고 침대에 눕힌다. 딸은 졸린 와중에도 뒤집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졸린데 뒤집느라 못 자니 점점 더 칭얼거린다. 그런 딸을 끌어안고 “자장자장-”을 백만번쯤 반복하다보면 딸보다 내가 먼저 잠들 것 같다.


하지만 딸과 함께 잠들면 절대 안 된다. 아기가 잘 때 뭐라도 먹고, 씻고 해야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딸을 재우다 함께 잠든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애를 볼 기운이 없었다. 하루종일 딸을 돌보려면 밥심이 필요하다. 엄마 반찬이든 먹다 남은 빵이든 뭐라도 주워먹고 기운을 내야 한다.


아기가 길게 자주는 날에는 먹고, 씻고, 잠깐 TV를 보며 누워있을 시간도 있다. 하지만 운이 나쁜 날에는 라면을 끓여놓고 이제 막 먹으려고 할 때 아기가 깨기도 한다. 토닥여서 금세 잠들면 불은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지만 그게 길어지면 라면은 안녕이다. 아기가 길게 자면 행복하고, 짧게 자면 억울한 하루하루의 반복이다.


가끔 로또같은 날들도 있다. 아기가 아침 9시가 넘어서 일어났는데, 하는 놀이마다 빵빵 터져서 꺄르륵 꺄르륵 웃어대고, 낮잠도 길게 자고, 남편도 일찍 오는 뭐 그런 날? 그런 날은 하루가 짧다.


하지만 그런 날은 거의 없다. 직장에 나가고,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영화를 보던 일상은 이제 한 가지 색깔로 칠해졌다. 아기를 먹이고, 놀아주고, 씻기고, 재운다.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기 위해 나는 졸려도 일어나고, 배가 고파도 참고, 남편이랑 싸워서 속이 상해도 아기에게는 웃는다. 그야말로 '존버 정신'으로 매 시간을 버티고 있다. 엄마가 된 이후, 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지는 건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일 거다.


그 긴 하루에 좋은 일이 하나씩만 있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보지 못 했던 친구의 전화라든가, 남편이 사온 맛있는 간식이라든가. 친구의 전화는 제대로 못 받을 확률이 높고, 남편이 사온 간식은 아기가 잠들어야 입에 넣을 수 있겠지만 그런 별사탕 같은 것들이 하나씩만 있어도 엄마로서 버티는 24시간이 조금은 짧게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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