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만 자라다오.

by 꼼지

처음으로 영유아검진을 받았다. 딸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태열과 땀띠 때문에 신경을 쓴 적은 있지만 딸이 아파서 마음을 졸여본 적은 없었다. 영유아 검진을 가면서도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자랐을까, 우리 아기 정도면 평균은 될까, 이런 궁금증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의사가 아기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아기 눈 밑에 누공이 있네요? 염증이 생긴 적은 없나요?”

딸의 오른쪽 눈 밑에는 작은 구멍이 있다. 내 왼쪽 귀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걸 딸이 물려받은 모양이다. 귀에 있는 구멍이 내 인생에서 별 게 아니었듯이 딸의 눈 밑에 있는 구멍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필 눈 밑에 자리잡아서 눈에 띄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의사는 큰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찰을 해 보고 장기적인 치료계획도 짜 보라고 했다. 겁이 덜컥 났다.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는 문제일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의사가 또 말했다.

“고개가 약간 기울었어요. 집에서도 자주 이런가요?”


그러고 보니 딸의 고개가 한쪽으로 갸웃하다. 고개를 가눈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똑바로 하지 못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했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어머니 눈에는 어떠세요? 제가 보기엔 약간 사경 기운이 있어요.”


의사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딸의 고개는 계속 오른쪽으로 기울어져있다. 항상 이런가 싶어서 휴대폰 사진첩을 뒤졌다. 고개를 똑바로 하고 있는 사진보다 갸웃하고 있는 사진이 더 많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귀엽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나보다.


의사는 안과, 재활의학과에 보내는 소견서를 각각 써줬다. 큰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찰을 하고, 알맞은 치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남편과 나는 인터넷을 뒤졌다. 누공과 사경이 정확히 무엇인지, 누구에게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눈 밑에 있는 누공은 사람마다 치료방법이 달랐다. 구멍은 있지만 실제로는 막혀 있어서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있고, 구멍에서 눈물이 새어나오거나 염증이 생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생 신경쓰지 않고 살았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미용상의 문제로 성형을 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딸의 누공에서 눈물이 새어나오거나 염증이 생긴 적은 없다. 하지만 의사가 진찰한다면 다른 이야기가 나올 지도 모른다.


사경은 좀 더 심각한 이야기가 많았다. 사경이 심한 경우에는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래도 치료가 안 되면 교정장치를 착용해야 한다고 했다. 고개도 제대로 가눌까 말까한 딸에게 교정장치를 씌우는 상상을 하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인터넷을 뒤지는 건 점점 안 좋은 상상만 하게 했다. 일단 진찰을 받기로 하고, 집 근처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안과는 열흘후, 재활의학과는 2주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빨리 진찰을 받아버리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 마음을 졸여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안과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누공에서 염증이 있거나 한 적이 있나요?”

소아전문이라는 의사는 손가락에 호랑이 인형을 끼우고 아기의 시선을 끌며 진찰을 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해냈다. 염증은 없었다고 이야기하자 의사는 아기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말했다.

“염증만 없으면 괜찮아요. 문제가 생기면 다시 오세요.”


너무 쉽게 끝나버린 것 같아 재차 질문을 했다.

“미용상 문제로 수술을 해야 하거나 하지는 않나요?”

그러자 의사는 우리에게 되물었다.

“엄마, 아빠는 아기 눈 밑에 구멍이 신경쓰여요?”

“아니요.”

“그럼 됐어요. 뭐하러 저걸 수술을 해요.”


너무 싱겁게 안과 진료가 끝났다. 눈에 대한 전반적인 검사까지 해 준 의사는 사시 기운도 없고, 모든 게 정상이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줬다. 다행히 눈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앞으로 우리가 해줄 일은 눈 밑의 구멍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워내는 일이다.

재활의학과 진료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의사는 눈으로 보고, 목을 잠깐 만져보더니 약한 사경이 있다고 했다. 아니라고 하길 바랐는데.


혹시 아기가 오른쪽으로만 뒤집어서 그런 건 아닌지, 아니면 분유를 계속 한쪽으로만 눕혀 먹어서 그런 건 아닌지 물었으나 그런 건 아니란다. 골반이 비뚤어지거나, 목에 물주머니 같은 게 있는 경우 사경이 오기도 하므로 엑스레이와 초음파 촬영을 해보란다. 다행히 엑스레이는 당일에 찍을 수 있었으나 초음파는 또 예약을 잡아야 했다.


엑스레이 검사를 할 때에도, 초음파 검사를 할 때에도 딸은 통곡을 했다. 엑스레이는 그나마 금방 끝났지만 초음파 검사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캄캄한 방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딸을 붙잡고 있는 동안 나도 울고 싶었다. 아기를 얼마나 더 고생시켜야 하는 걸까. 빨리 이 시간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서는 또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했다. 큰 병원은 이런 게 힘들다. 초음파 찍는 사람 따로, 그걸 설명해주는 사람 따로. 그 모든 걸 위해 계속 예약, 예약, 예약의 연속이다. 울며불며 찍은 초음파가 어떤지를 보기 위해 일주일후에 또 병원에 갔다.


다행히 골반에도, 목에도 별 이상이 없단다. 하지만 약한 사경기운이 있으므로 매일 아기 목을 스트레칭 해주란다. 재활치료 같은 것도 필요없다고 했다.


괜찮다.

이 말을 듣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동안 나는 아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다른 건 바라지 않으니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흔한 소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빌고 있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무조건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 나는 잘 공감이 되지 않았다. 젋고 건강했던 나는 바라는 게 많았다. 돈도 많았으면 좋겠고, 남들보다 잘 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보니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흔한 말 속에 담긴 간절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솔직히 전에는 딸이 다른 애들보다 예쁘고, 똑똑하게 자라길 바랐던 날들이 적지 않았다. 한번도 아프지 않고 자라준 딸이 얼마나 고마운지도 모르고 까불었다.


딸도 언젠가는 아프기도 하고, 다치기도 할 거다. 아픈 날에는 밤을 새우며 간호해야 할 거고, 다친 날에는 속상해 하며 병원으로 뛰어야 할 거다. 그래도, 그럴 수만 있다면 건강하게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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