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의 나
2018년 9월은 나에게는 끝의 달이자, 시작의 달이었다. 이처럼 모순적인 표현을 일상적으로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끝의 달이었던 이유는,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1년 반 가량 지속해 오던 중2 영어과외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무보수로 한 것까지 따지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속해 오던 나의 과외 라이프는 이 학생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맡아주기를 어머니께서 바라셨지만, 취업 준비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무척 아쉬워하셨다.
선생님의 멋진 미래를 응원하겠다는 저 문구는, 국어 영역에서 살짝 미진했던 학생이 쓴 것이라기보다는, 진정으로 아쉬워해주셨던 어머니께서 쓰신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이지만, 그 학생은 결국 현재 모 유명 자사고에 진학 중이라고 건너건너 들었다.)
반면, 시작의 달이었던 이유는, 본격적으로 내가 A매치 금융공기업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1월부터 시작했던 공부를 슬슬 마무리짓고, 정말 '취업'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 입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던 시점이 다름아닌 9월이었던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본격적으로 자기소개서라는 '글'을 쓰는 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나는 위와 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A매치 금융공기업 중 내가 가장 가고싶었던 곳, 이외에 3~4곳 정도에 더 지원하였는데, 그 중 절반은 떨어지고 나머지 절반은 합격했다.
A매치 금융공기업들의 경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분산되었지만 보통은 하루에 몰아서 합동으로 필기시험을 치른다. 그 이유는, 지원자들이 이 기관 저 기관 돌아다니면서 모든 필기시험을 보면서, 종국에는 입사를 취소하는 '충성도 낮은' 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ㄱ기업 입장에서, 우리 회사 붙었는데 ㄴ기업도 붙어서 ㄴ기업에 입사해버리는 일들이 잦아지면, 자존심 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이름 좀 있는 금융공기업들은 여러 기관의 필기시험을 한 응시자가 동시에 치르지 못하도록 술수를 쓴 것이다.
나는 좀 이게 싫기는 했다. 나도 서류 합격한 곳들 전부 마음에 들어서, 필기 시험 다 보러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기에, 애초에 A매치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며 입사하기로 마음먹은 '그 곳'의 시험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참고로, 이 글을 읽고 있는 A매치 금융공기업 준비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한 기관을 타겟팅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게, 'A매치 금융공기업 아무데나 좋은 곳 가야지'라는 마인드로는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어렵고,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1차 필기시험
9월에는 이 기관의 1차 필기시험이 있었는데, 모든 문제가 객관식 선다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시험이었다. 졸업사진 찍는 이틀 후에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어서, 졸업사진을 찍으러 가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실리보다는 추억이지!'라는 생각에 사진도 열심히 찍고, 시험도 열심히 봤다.
그 결과는?
결과는 합격.
10배수라서 그리 부담은 아니었다고 사후적으로 평가했으나, 사실 시험 직전까지도 너무 떨려서 죽는 줄 알았다. 10월 말에 있을 2차 필기시험을 위해 나는 막판 스퍼트를 달렸다. 그렇다고 행정고시 준비생들처럼 하루종일 공부를 할 수는 없었던 것이, 10월에는 2학기 중간고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히 시간을 분배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준비했다. (이 역시 타게팅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당시 준비하던 기관의 시험은, 화폐금융론을 어렵게 다루기로 악명이 높았다. 이에 정운찬 '화폐와 금융시장'을 깊이 탐독하며, 시험 때 틀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실제로, 화폐금융론이 나한테 워낙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던 터라, 그 공부가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경제학 공부가 재밌었어서 참 다행이다.
다시 말하면, 재미있는 공부가 결국에는 돈이 되는 공부였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9월은 지나갔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