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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Jun 28. 2021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2018년 5월의 나

지금도 그렇지만, '5월'은 생각보다 나에게 되게 차분한 달이다. 4월의 벚꽃이 세상을 한바탕 휘몰아치고 나면, 5월의 자연은 형형색색이던 지난 날을 뒤로 한 채 초록빛으로 자연스레 통일되어 간다. 대학생의 '나'는 격동의 중간고사를 눈물(?)로 떠나보내고, 5월에는 한 번 숨을 고르곤 한다. 하반기 공채시험을 준비하는 나로서는 숨을 고를 시간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그래도 나에게 5월은 그런 달이어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네이버 클라우드를 뒤적거리다보니 2018년 5월에 나는 이곳저곳 싸돌아다니며 여가시간을 알차게도 보냈더라. 이 와중에 시험 준비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지금 같으면 절대 그렇게는 못 한다. 지옥 같은 퇴근길의 여의도역을 뚫고 가까스로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은 정말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나에게 주어진 퇴근 후 생활은 온전히 나의 '휴식'에만 초점에 맞추어져 있지, 그 때처럼 알찬 취미생활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그 때의 내가 존경스럽다. 학교 다니면서 과제도 빼먹지 않고 했고, 시험 준비에도 점점 박차를 가해 열심히 준비했으며, 주변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 자신의 취미 생활까지 놓치지 않았으니, 지금의 내가 좀 배워야한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를까.


그 때의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집중했던 분야는 바로 '예술 감상'이다. 지금의 내가 그 분야를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모두 채워버린다면, 그 때 나는 조금 더 다채롭게 예술을 감상할 줄 알았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전시회 등등, 가리지 않고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예술만큼 인간이 인간을 인간스럽게 표현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 매력에 빠져 집돌이인 나는 늘 맛깔 나는 예술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 중 하나가 2018년 5월에 열렸던 '성남시 파크콘서트'였다.


종신이형 사랑해


성남시 파크콘서트는 분당 중앙공원에 가수들을 무료로 초청해서 진행되는 콘서트인데, 당시만 해도 쟁쟁한 뮤지션들의 무대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관객들이 몰리곤 했다.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 지라 콘서트의 혜택을 맛볼 수 없게 되었지만, 세상이 정상화만 된다면 당장 가고픈 콘서트가 바로 이 파크콘서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5월 파크콘서트에는 당시 내가 정말 사랑했던 뮤지션들인 정인과 윤종신이 등판했다. 정인은 리쌍의 뮤즈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미워요', '장마' 등의 히트곡으로 세상에 알려진 가수고, 윤종신은 015B 객원 보컬로 시작, 작사/작곡/노래 등 대중음악의 각 분야에서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한 뮤지션이다. 특히, 윤종신의 경우 나는 집에 음반이 몇 장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그 날 그렇게 등장해서 수많은 노래들을 선사해주고 갔다.


이 곡 너무 좋음..


정인과 윤종신을 이어주는 한 곡의 노래가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곡, '오르막길'이다. 2012 월간 윤종신 6월호로 공개된 '오르막길'의 가사는 A매치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는 동안 나에게 정말 깊은 위로가 되었다. 한 사람의 자그마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을 그 곡이 돌고 돌아 신촌 방 한구석에서 '통화정책의 파급경로'를 외우고 있던 나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 그 찬란한 힘을 잊을 수 없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 지 몰라.


누구나 오르막길을 오르기 전에는 겁을 먹게 되어있다. 길이 저 하늘을 향해 나 있다는 사실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 같은 비교적 작은 생물에게는 경이롭기까지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길'이기에 걷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본래 고민하던 진로를 저버리고, "웃음기"를 저버린 채 "가파른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했던 길이기에, 미소를 잃을 지 모를 미래를 감수한 채 걸었다. 마음 한 켠에 "미소를 기억해"둔 채로.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했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꽤나 "먼" 거리를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때쯤 살랑거리는 바람이 나에게 느껴지면,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 전의 내가 보이기도 하고, 즐거웠던 학창 시절이 아른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내 앞에 가장 큰 이미지로 다가온 것은, 자리에 앉아 경제학 문제를 풀던 나의 모습이었다. 실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지만, 그것이 결국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었기에 꽤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오르막길'을 들었지만, 이처럼 이 노래가 와닿던 시절은 전에 없었다. 특히 현장에서 곡을 만든 '오르막길'을 윤종신이 직접 가창하는 장면을 보면서 내가 집중해 온 '예술 감상'의 욕구를 충족시킨 동시에, 내가 걷던 길에 대한 확신을 되새길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취업 준비 이외에 자신이 즐겁게 매진할 수 있는 분야를 지니는 것을 추천하곤 한다. 취업 준비의 고됨이 특정 분야의 즐거움으로 상쇄될 수 있고, 본인을 계발할 수 있는 계기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길을 걷고 있다. 이 길이 정답일까?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는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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