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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Jun 22. 2021

여러분이 꿈꾸는 그런 환상은 아니에요

2018년 4월의 나

학교 앞 카페에서



어찌저찌해서 경제학과 수업을 청해 듣게 된 나는 A매치 금융공기업 준비와 중간고사 준비를 병행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그 찰나에 벚꽃은 어느새 피었다가 금새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나는 다급한 벚꽃의 생사를 쫓지 못한 채 대학생으로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벚꽃놀이를 놓쳐버렸다. A매치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느라 벚꽃을 누리지 못했다는 핑계는 대지 않겠다. 그 정도로 내 인생을 포기한 채 매진하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분명 나는 정신이 없었다. 벚꽃을 등한시할 만큼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은 정적인 인생조차도 역동적으로 만들어버리기 마련이니까. 나는 홀로 A매치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는 일에 결코 확신이 들지 않아 다음과 같은 일을 해버렸다.


1. 


학교 커리어센터에서 주관한 2018년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입사설명회에 참석하였다. 학교에게 드디어 득을 보는구나,라고 생각했던 몇 안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전공이 상경계열이 아니다보니, 나의 진로에 대해 의견을 구할 수가 없었던 상황에서 이러한 설명회는 나에게 정말 빛과 소금이었다.


금감원에 경제직렬로 입사한 두 명의 학교 선배들은 어떻게 경제 공부를 하면 좋은지, 어떤 생각으로 준비에 임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해주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주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물론, 그러한 열변에는 본인들의 입사에 대한 자부심이 녹아있었을 것이다. 입사는 그만큼, 어려우면서도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니까.


나도 언젠가 그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빛과 소금과 같은 설명회 속에서 고독했던 것 같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겠지? 라는 생각에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근거 없는 부끄러움에는 약도 없다는데.


한편,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은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우리의 '취업을 아직 하지 못함'이라는 특성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대학생이라 미래가 창창하구나'라는 특성에 집중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와서는 그 마음이 이해되지만, 당시에는 내가 뭐라고 부러워해, 이 부러운 사람들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설명회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나에게 인상깊게 다가온 교훈은 다음과 같다.


- 이 기관, 저 기관, 들쑤시지 말고 한 기관만 타겟팅해서 준비해야 한다!

- 내가 가고싶은 기관에 관한 자료를 매일 같이 물색하면서 그 기관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는 금감원뿐만 아니라 어떤 회사를 준비하든 통용되는 우수한 행위여서, 이후 취업 준비를 하는 데에도 나는 이것들을 좌우명처럼 새겼다.


한편, 그곳에서 나는 A매치 금융공기업의 명암같기도 하다. 명(明)은, 금감원에 재직 중인 선배들이 되게 자신감 있게 본인들의 기관을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금감원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멋있어보였다. 금융공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입장에서는 금감원이 가진 쌀 한 톨 마저도 금 한 돈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자신감이 설명회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개인이 집단에 속할 때 그 집단을 통해 개인이 소개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전히 나는 금감원 설명회가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그 설명회에 참석했던 조사역이 누구였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도, 기관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 사회고, 그런 시대니까.


이같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내 마음 속에 암(暗)이 발생했다.


나는 설명회에서 집단에 치여 지쳐 있는 개인들을 목격했다. 그것은 자화상이기도 했고, 조사역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성경 말씀처럼 받아적던 절실한 이들의 초상화이기도 했으며, 그 말씀들을 선사하던 조사역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본인 회사의 이모저모를 설명하면서 알 수 없는 한숨을 내뱉던 조사역은 "여러분이 꿈꾸는 그런 환상은 아니에요."라고 이야기했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했을 미묘한 한숨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본 것이다. 설명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선배 한 명은, 갑작스레 생긴 업무 때문에 야근을 하느라 저녁도 못 먹은 채 설명회가 끝나기 직전에 허둥지둥 설명회장으로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그를 보면서 왜인지 모를 짠함이 느껴졌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한 명의 조사역이었을 테지만, 내가 꿈꾸는 이상형의 실제 상(狀)이 저 모습이라면 나는 더 이상 꿈을 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3시간 동안 느껴진 명암은 나를 웃게도, 울게도 만들었다. 매일 A매치 금융공기업의 보도자료를 챙겨보던 나는, 그 날 보도자료를 읽지 않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명암을 뒤로 한 채 다시 정진하기로 했다. 어찌 됐든 내가 목격한 명암은 그 날의 우연일 수도 있으며, 그러한 단발적 사건으로 인해 나의 장기적 계획을 뒤흔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와중에 A매치 금융공기업 경제직렬 스터디를 시작했다. 대개 경제직렬 스터디는 보통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기본 개념 및 문제풀이로 이루어지며, 시험을 보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나도 그런 스터디를 했었다. 각자 원픽으로 꼽던 기관은 달랐으나, 'A매치 금융공기업'이라는 일관된 목표 하에 우리는 모였다. 우리 학교와 옆 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졌으므로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매주 2일 2시간씩 스터디를 진행했다.


엄격한 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매번 꼬박꼬박 출석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나 자신만의 룰을 만들었다. '진짜 죽을 것 같은 상황 아니면, 무조건 출석해야지.' 나는 나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 단원, 혹은 문제풀이를 진행하는 날에도 출석했다.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스터디의 본연적 효과보다도, 나에게 벗이 생겼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교사나 기업교육 계열 취업을 희망하던 내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A매치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는 나는 정말로 섬이었다. 그러나 스터디를 하면서 나와 유사한 꿈과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조금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꿈꾸는 A매치 금융공기업은, 내가 꿈꿀 만한 그런 곳이라고. 그들의 존재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덕분에 벚꽃이 졌음에도 나는 힘을 낼 수 있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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