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의 나
'18년 3월 기준,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창조물로서의 몫, 인간으로서의 몫,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몫, 대학생으로서의 몫을 나누어받은 사람이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는 야심차게 시작되었고, 경제학을 미처 제대로 수강하지 못했던 나는 부랴부랴 경제학 전공수업들을 찾아듣기 시작했다. 본 전공이 경제학이 아니었던 나는, 수강신청에 있어 불리한 입지에 놓였지만,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는 꾸질꾸질한 학생을 거둬주기로 결심하신 교수님들 덕분에 나에게 필요한 여러 강의들을 정식으로 수강할 수 있었다.
수강을 하게 된 점은 정말 감사했으나, 계량경제학은 정말 나로 하여금 인간 이하의 비참함을 느끼게 해준 과목이다. 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반복기대의 법칙이 뭐야. 기대를 반복하면 어떻게 된다는 거야. 나름 열심히 수강하고 필기도 꼼꼼히 했으나, 계량경제학을 수강하는 하루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몫'만큼은 감사히 제공받고자 했다. 이 말인 즉슨, 나는 감사하게도 대한민국 유수의 대학에 입학하여 해당 전공으로 유명한 교수님의 학부 수업 서비스를 '등록금'을 대가로 지불하고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경제학적으로 놓고 보면 시장에서 수요자로서 정당한 대가를 공급자에게 지불하고 해당 물품 및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인데, 고마울 것이 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교육서비스가 오가는 시장은 결코 완전경쟁시장이 아니다. 교육서비스의 질이 각 대학마다 다르기에 완전경쟁시장의 중요한 가정 중 하나인 '상품이 동질적'이라는 가정이 위반되고, 그 누구나 해당 서비스를 수요하고 공급할 수 없기에 '자유로운 진입장벽'의 가정 역시 단번에 위반된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조금 잘 한 덕분에, 높은 품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었으니 고마워해도 된다.
그러나 고마움에서 끝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서비스는 그냥 내가 소비해버리고 만족스러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인적자원'을 계발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했다. 계량경제학을 수강함으로써 나는 나의 경제학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했고, 더 나아가 금융공기업에 취직하여 임금으로 그 정량적 성과를 마주하고자 했다.
..라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몫 전부가 아님을 느낀다. 내 눈 앞에 있는 몫을 잃을까봐 두려워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그 당시 조금만 더, 나 자신의 가치와 권리를 되새기며 소중히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려운 미래를 정말 곧이곧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꽃다운 현재를 조금 더 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복기대의 법칙(Law of Iterated Expectation)은 조건부 기댓값에 대해 반복적으로 취한 기댓값은 결국 무조건부 기댓값이 되는 마법과 같은 법칙이다. 조금 더 문과 학부생스럽게 해체해보면 이렇다. 합격을 조건부로 하는 나의 미래를 무작정 떠올리곤 했다. 나의 미래의 조각조각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날카로웠고,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매일 같이 그것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던 나에게 남은 것은, 결국 '합격'이라는 조건과 무관하게, 나의 현재에 아무 의미도 없는 두려운 미래 그 자체였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잡아먹은 것이다.
나의 몫은 '합격이 보장된 장밋빛 미래'만이 아니다. 멋진 정장을 입고 동기들과 웃으며 출근하는 그런 현실감 없는 미래가 결코 아니다. 그러한 미래를 줄곧 나열해봤자, 남는 것은 미래에 대한 평균적인 두려움뿐이다. 오히려 나의 몫은 '현재'다. 고생하는 나를 응원하는 주변 사람들, 선선한 공기를 쐬며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주변 환경 등이 나에게 오롯이 존재하는 몫이다.
이를 알면, 나는 오히려 나의 몫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지금 와서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실제로 자주 하는 말이 '현재를 조금 더 즐기자'인데, 그것을 굳이 너드(nerd)처럼 계량경제학을 인용해서 설명해보았다. 과했나 싶기도 하지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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