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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Aug 09. 2021

최단거리를 검색했다

2018년 10월의 나

왜 없어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 금융공기업이라면 문을 두드려 본 나는, 나로서도 잘 감이 안 잡히는 합격과, 나로서도 왜 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는 불합격의 업-앤-다운을 경험했다. 9월부터는 내가 타게팅한 Tier 1의 금융기관을 준비함과 동시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Plan B, C, D...를 마련해놓기 시작했고, 10월에는 그 결과와 마주한 것이다.


행동경제학에는 '손실회피'(Loss Aversion)라는 개념이 있는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같은 양/폭이라도 개인이 그것을 얻을 때의 만족감과 잃을 때의 상실감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전자보다 크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 개념을 소개하는 이유는, 당시의 내가 스스로의 손실회피 성향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같은 노력을 투하한 서류전형에 있어, 서류합격을 했을 때의 기쁨보다 서류탈락을 했을 때의 서러움은 배로 컸다.


저곳은 붙었는데, 이곳은 대체 왜 떨어졌지?


저곳의 붙음보다 이곳의 떨어짐에 대해 더 궁금해하고, 더 몰입해버렸다. 그러다 보면 합격에 대해서 10분 기뻐하고, 불합격에 대해서 30분 우울해하기 일쑤였다. 점점 취업준비를 하는 것이 추세적으로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타게팅한 금융공기업을 향해 달리고 있던 기차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었다. 어떤 다른 수모가 있더라도, 멘탈은 단단히 붙잡아야 10월 말 예정되어 있던 필기시험을 무리없이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멘탈 붙잡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에이, 넌 붙을 거야."라고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들의 말에도, '그게 그렇게 쉽나?'라는 한 두바퀴 꼬여버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인성 파탄이다.


날 죽여줘


특히 공부도 매일 해야 했지만, 나는 졸업을 이제 앞둔 말년의 대학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에 여자친구와 매일 데이트를 하고, 12월에 있을 김동률 콘서트 예매에 전력을 투구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자친구와 김동률 콘서트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아니, 더 나아가 나 자신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무엇 하나에 그리 집중하지 못하고, 내 인생의 화살표는 철저히 허공으로 발산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결국 지금 당장 나의 화살표는 10월 말 그 시험에 수렴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괜히 어영부영대다가 나를 비롯하여 가족, 연인, 친구들 모두에게 민폐를 끼칠 바에는, 제대로 최선을 다 하고 시원하게 회포를 풀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1년 내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는데, 이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너무 열정이 없는 것 같다는, 자조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국제경제학, 화폐금융론, 그리고 계량경제학. 비록 전공자는 아닐 지언정, 근래 들어 그 어떤 공부보다 열심히 파고들었다. 글을 쓰며 늘상 말했듯, 이는 결코 억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되게 재미있었다. 화폐금융론은 특히 지금도 가끔 노트를 뒤적거리며 읽어 볼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 그런 마인드로 소위 '디깅'을 했던 시기라, 조금은 덜 떨렸던 것 같다.


또, 지금 와서 이야기지만, 전에 이야기했던 금융공기업 스터디가 나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한 기관을 무작정 타게팅하는 바람에 놓칠 뻔했던 다양한 방법론과 시각을 스터디 덕분에 갖추게 되었다. 특히, 내가 1차 객관식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던 데는, 논술형 시험보다 객관식 시험을 주로 준비하던 여타 스터디원들의 스케줄에 내가 적극적으로 맞추었던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정말, 나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야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달리던 사람들과의 사소한 이야기조차 뜻깊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10월 말, 언제인 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추웠던 어느 대학교 캠퍼스. 나는 아침 일찍 4평짜리 자취방에서 나왔던 터라, 배가 고팠다. 파리바게뜨에서 간단히 소보루빵을 사 먹고, 분위기가 싸늘했던 어느 강의실에 입장했다. 늘 들고다녔던 가방과 필통, 책들이었지만 그 날 따라 더 차가웠다.


어떻게 끝났는 지 모르겠다. 너무나 나를 쉽게 제칠 것만 같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삐질거리며 나왔다. 원래 곧장 집으로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배가 너무나 출출했다. 근처 KFC로 가 값싼 버거 세트를 사 먹었다. 그리고 네이버 지도를 켜, 집으로 가는 최단거리를 검색했다.


최단거리. 나는 최단거리를 알아내려 노력했다. 어떻게든, 가장 효율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탄 기차는 그런 기차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느리게 도착할 마음은 없었다. 눈앞에 마주할 때까지, 가볼 생각이었다. 내가 가는 이 길에도 지도 앱과 같은 편리한 수단이 있었으면, 싶었다.


몇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금방 잊혀졌다. 밤마다 나는 1년 더, 이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는 일은 상상했다. 가능할까? 아, 고시처럼 준비하고 싶지 않은데 어쩌지. 매일 중앙도서관 가서 공부해야 되나. 너무 싫다. 하지만 어떡해, 현실이 그런 것을.


다만, 희망의 끈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논술 시험에서 내가 정말, '이건 무조건 출제될 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주제가 나와버린 것이다. 문제의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한계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의 사회경제적 문제점과 해결방안, 그리고 직접 제시한 해결방안의 한계점과 보완책을 작성해야 하는 문제였던 것 같다. 그 해의 화두가 포용적 금융과 생산적 금융이었던 만큼, 이런 내용을 다룰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것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논술을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잘 쓰지 않았을까, 하고 확신 없는 기대를 살짝 가지고 있기는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1월이 되었다. 모두가 서늘한 가을의 한가운데서, 곧 마주할 겨울을 준비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필기 시험 합격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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