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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Aug 15. 2021

귀에 가장 잘 맞는 이어폰

2018년 11월의 나

다른 곳의 필기시험을 합격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의 나는 혼돈의 카오스에 휩싸여 있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나는 내가 원픽으로 타게팅하던 금융기관의 필기시험에 합격한 상태였고, 이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전 글들에서는 기술하지 않았지만 다른 기관의 필기시험을 보러 가기도 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합격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그다지 입사하고 싶었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오만방자한 마인드셋..), 증빙서류 제출을 하지 않고 면접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결심'은 생각보다 쉬웠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가고 싶은 곳과 가고싶지 않은 곳이지만 시험은 한 번 봐본 곳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위 '선택과 집중'을 쏟을 방향이 어느 쪽인 지는 분명했다. 그 시점에서 나는 내가 합격한 원픽 금융기관의 면접을 선택하고 집중해야만 했다.


내가 합격이라니..!


제대로 공부를 시작한 지는 약 8개월이 넘어가고 있었고, 예상보다 바빴던 4학년 1학기를 지나 2학기에도 과제와 중간고사로 인해 허덕이고 있던 11월이었다. 나는 필기시험 합격의 기쁨을 뒤로 한 채, 얼른 면접 스터디를 구했다.


합격 당일 아침에 잠을 너무 자느라고 합격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늦게 알아차린 탓에, 이미 면접 스터디가 많이 꾸려진 상태였다. 내가 들어갈 자리가 이미 다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절망하며, 당시 입장해 있던 오픈 카톡방에 'XXX 면접스터디 남은 자리 있나요...'를 연신 외쳤다.



그때 어느 한 분이, 자리 하나가 비었다면서 나를 면접 스터디 카톡방에 초대해주었다. 나를 포함하여 총 6명이 모였고, 우리는 순식간에 면접 스터디 일정을 잡았다. 나는 대학생이라 강의 듣는 시간만 아니면 프리한 편이어서, 무리없이 스터디 일정에 맞출 수 있었다.


다행히 집과 가까운 신촌 한복판에 있는 스터디룸이 장소로 정해져서, 나는 전공 강의를 듣고 신나는 마음으로 스터디룸에 갔다.


그런데..


나의 왼쪽은 변호사, 오른쪽은 회계사



다들 스펙이 심상치 않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자리에 하나둘씩 앉았다. 낯가림이 좀 있는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스터디룸의 조형물들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괜히 가방 속을 부스럭대며 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선, 다들 축하드립니다..!" 스터디를 모집하셨던 분의 이 한 마디로 인해,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우리는 면접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에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면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했다.


스터디원분들은 내 직업과 나이가 각각 대학생, 25살이라는 사실을 듣고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 분들을 보면서 놀랐다. 회계법인에서 일을 하다가 공기업으로 이직을 하고 싶어 준비를 시작한 회계사, 올해 변호사 시험에 통과하여 서초동 말고 여의도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변호사, 꿈이 생겨 이직을 준비한 경찰 등, 나에게는 너무나 '이미 이룬' 사람들이 내 앞에 앉아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왜 이 사람들은 굳이 여기에 입사하려고 하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 분들의 말은 하나 같이 다 비슷했다. '나와 더 잘 맞을 것 같아서요!'


그렇다. 스터디원들은 '이 회사가 너무 멋있고 좋고 짱이다'라는 생각보다도, 본인 자신에게 집중해서 결론을 내린 듯보였다. '나랑 잘 맞을까?'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탐구를 한 사람들이었다. 이 분들에게 회사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내 귀에 가장 잘 맞는 이어폰 같은, 현실이었다.


오히려 스터디원들은 내가 왜 첫 직장으로 이 곳을 가고싶어하는지를 궁금해 했다. 이에 나는 또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회귀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입사하려고 하지?'


결국에 답은 간단했다.


'내 생각엔 내가 갈 수 있고, 가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근거 없는 자신감일 지라도, 이 마인드로 면접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물을 도출해낸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동기를 시작으로, 나의 전문성과 혁신에 대한 경험을 풀어내는 것까지도 역시 이런 마인드셋을 갖추고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면접 준비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내가 왜 이 기관에 입사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이 기관의 인재상과 내가 왜 일치하는지를 나타내고, '내가 왜 이 기관에 가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지'는 나의 경력/경험에 근거하여 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나타낸다.


PT면접, 토론면접, 집단면접 등 다양한 면접의 형태가 있지만, 결국에는 위 두 가지를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형식의 면접을 다 준비하되, 형식보다는 내용, 그리고 태도에 집중하여 서로를 케어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가량 면접을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11월 어느 날, 생각보다 매우 추운 새벽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회사 앞으로 갈 준비를 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정신이 좀 몽롱했다.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탔다.


여의도역 주변은 한산했다. 사람들이 출근하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여의도역 주변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힌 채 회사 로비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스터디를 같이 했던 분들이 눈에 띄었다.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는 면접장에 갈 준비를 했다. 면접은 고양시의 어느 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회사 앞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다.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마음을 되뇌이며 나는 버스에 올라탔고, 어느새 면접 장소에 도착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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