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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May 10. 2021

지안의 끝 :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나의 아저씨」 리뷰 (4)


우리는 「나의 아저씨」를 통해 교육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나의 아저씨」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한 드라마를 가지고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글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의 아저씨」를 통해 교육을 논하면서 지안이 다다른 '지안의 끝'에 대해서는 꼭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안의 끝'이란 결국, 교육의 목적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지안도, 동훈도, 제각기 힘든 삶을 살아왔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원래 그 자체가 서러움이며, 우리가 살면서 극복해야 할 숙제라고. 그들은 그 누구보다 어려운 숙제와 마주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평범한 우리에 맞닿아있기에, 공감을 자아낸다.


지안과 동훈 간의 소통과 공감은 그 자체로 교육을 발생시켰다고 이전 글들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왜? 교육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동훈이 지안에게 제시한 공감의 힘과 용서의 뜻은 지안을 교육시켰고, 지안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고 만다.


지안은 동훈의 공감 덕분에 본인의 인생을 옭아매고 있던, 누군가를 죽였던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동훈의 용서 덕분에 도청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지안은 이 덕에 본인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며 괴롭혀 온 광일을 이해하고, 아버지를 살해한 일에 대하여 광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게 된다. 동훈이 지안에게 제공한 교육이, 그대로 지안으로부터 광일에게 전달되는 모양새다.


이는 우습게도 '도청' 덕분이다. 어찌저찌하여 지안이 지금껏 동훈을 도청한 파일이 광일의 손에 넘어가게 되고, 광일은 그 도청 파일들을 엿들으며 지안이 본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착했던 애예요. 걔네 아버지가 날 때리면 말리다 대신 맞고, 그땐 눈빛이 지금 같지 않았어요. 걘 날 좋아했던 기억 때문에 괴롭고, 난 걔가 착했던 기억 땜에 괴롭고.
-「나의 아저씨」15화


지안의 교육이 효과를 보는 장면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이어진다.



동훈이 일방적으로 지안을 교육한 것은 아니다. 교육은 삶이고, 삶은 결코 일방향이 아니다. 교육은 제공자가 곧 수용자이고, 수용자가 곧 제공자인 재밌는 싸움이다. 동훈도 지안 덕분에 깨닫고, 치유된다. 지안을 교육하며 본인도 교육된다.


지안이 본인을 도청한 사실을 알게 된 동훈은 이후 지안을 만나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고마워. 거지 같은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마워.
- 「나의 아저씨」 15화


욕을 들어먹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지안에게 이같은 따뜻한 용서는 결과적으로 지안과 동훈을 '편안함에 이르게 한다.'


너 나 살리려고 이 동네 왔었나보다.다 죽어가는 나,살려놓은 게 너야.
난 아저씨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봤는데.
- 「나의 아저씨」 16화


이를 지, 편안할 안. 지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편안함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안은 이름과 반대로 살면서 결코 편안함에 이른 적이 없는 캐릭터였다. 그러던 지안이 동훈을 만나 처음으로 '살아봤다.' 드라마에서 인생을 산다는 것은 곧 편안함에 이르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교육의 목적이 곧 피교육자를 편안함에 이르도록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편안함의 모양은 제각기 다르다. 좋은 대학에 갔을 때의 기쁨일 수도 있고,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의 뿌듯함일 수도 있고, 숨막히는 스포츠 경기의 긴장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편안함은 지극히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자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종국에 지안은 정말 편안함에 이른다. 그것은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찍는 일이 아니라, 정말 나의 삶을 나의 삶답게 살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것이다. 직장 동료와 편안하게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아주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삶의 장면들 속에 지안은 포용된다.


동훈 역시 마찬가지다. 본인을 괴롭혀 온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과 새로운 회사를 차린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든 상관없다. 동훈은 동훈이 느끼는 방식의 자유를 바탕으로 자신의 방향을 선택했고, 편안함에 이른 것이다.


교육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히 너를 내가 변화시키겠어,가 아니라, 너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편안함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자고 하는 일.


나는 지안의 끝을 보기 위해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되뇌이게 될 것 같다.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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