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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Mar 26. 2022

취업은 했지만 나는 또 취준생

2019년 4월의 나

출처 : 잡코리아


약 30년을 아우르는 MZ세대 중 중간쯤에 해당하는 나는 26살이던 2019년 3월, 취업에 성공한지 약 2개월이 채 안 되던 시점에 이직을 시도했다. 윗분들이 들으면 한숨부터 푹 내쉬면서 요즘 것들의 부족한 Loyalty에 대한 열변을 토하시겠지만, 나에게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못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시류에 편승하기 급급했고, 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주어진 환경을 깨나가서 내가 환경을 조성하려는 시도는 잘 하지 않았다. 보통은 생각에 그쳤다.


이번에도 그 지점에만 머무르지 않고, 굴러들어온 돌이 제대로 굴러나갈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자 했다. 나는 한동안 꺼두었던 자소설닷컴에 오랜만에 로그인하였고, 채용공고를 매일 같이 살피며 어디다 지원할지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주 1회 참여하던 경제학 모의고사 스터디도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물론 그 외에 따로 경제학 공부를 할 시간을 내지는 못했지만, 그거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광명이 찾아오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2019년 3월부터 4월까지, 약 한 달 동안 총 5개 회사에 지원서류를 제출했다. 다 넓게 보면 금융공기업이라고 볼 수도 있는 회사들이었다. 물론, 금융이라고 보기에 애매하기도, 공기업이라고 보기에 애매하기도, 싶은 회사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중에 한 곳은 내가 전부터 가고싶어했던 A매치 금융공기업이었다.


작년에 내가 지원했던 회사는 하반기에만 채용을 진행하기 때문에, 상반기에 지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2019년 올해는 A매치 금융공기업 공고가 상반기에 뜨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나는 A매치 금융공기업에 대한 지원은 하반기로 미루고자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습적으로 그 중 한 곳이 상반기 채용 공고를 띄우면서 A매치 금융공기업 준비생들의 발길이 바빠졌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주 1회 모의고사 푸는 것이 전부였던 내게 막상 찾아온 기회는 달갑지 않았다.


4월이 되자 만개한 벚꽃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공부해놓을 걸.


누구나 하는 후회,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후회였다. 매일 같이 8시 반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하고, 하루에 3시간 가량을 지하철 위에서 보내다 보면, 출퇴근 전후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는다. 지쳐 쓰러지기 바쁘다. 밥도 잘 안 들어갈 정도로.


아마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죽을 각오로 이직을 준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가능한 선에서는 할 일을 다 하고자 했다. 현 직장에서의 업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가 이직을 준비하는지 몰랐다. 대학병원 행정직 특성상 이직률이 높지 않고, 보통은 만족하고서는 다닌다. 평생 직장도 보장되고, 연봉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는 전년도까지만 해도 품고 있던 몇 안되는 목표가 가슴 속에 살아있었기 때문에, 대학병원의 안정성에 마음 편히 기대어 살 수가 없었다.


서류 지원 기한에 맞춰서 각 회사에다가 서류 지원을 무난하게 마쳤다. 연초에 50~60개 회사에다가 지원할 때 써놓은 자기소개서 분량이 꽤 되다보니, 자기소개서 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럴 때 자기소개서 써내려가느라 고생하던 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디테일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이 돌려썼다.


1. 지원동기 : 어릴 때부터 금융의 공공선에 대해 매료됨 + 이 회사가 띄고 있는 공적 가치에 이끌림

2. 역량 소개 : 인문학적 역량 + 경제학적 역량 + 사무행정적 역량

3. 혁신/성취경험 : 가장 그럴듯한 거 하나 골라서 돌려쓰기

4. 그 외 : 기관의 성격, 핵심가치, 기관장의 인삿말 및 신년사 참고해서 버무리기


이런 식으로 쓰면 생각보다 오래 안 걸린다. (인사담당자들이 볼까봐 걱정이다.)


특히 내가 지원한 A매치 금융공기업의 서류를 쓸 때는 1시간도 채 소요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격증, TOEIC 등이 만료되지 않고 잘 살아있었고, 문항도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서류를 상당히 빡세게 보는 A매치 금융공기업으로 유명한 곳이었어서, 긴장은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자소설닷컴을 뒤적거리다보니, 자기소개서에 적었던 내용 중 인상깊었던 것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


Q.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험


A. 저는 1년 간 준비했던 XX 기업 최종면접에서 불합격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일주일 내내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도 시간을 내어 경제학 각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었습니다. 비록 최종면접에서 아쉬운 결과를 얻었지만, 뜻깊은 과정이 있었기에 감사했습니다. 그 동안 공부한 여러 가지 지식들과, 꾸준한 공부 습관을 통해 키운 꼼꼼함과 분석력, 그리고 금융시장에 대한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저는 <본 기업>에서 선진금융기관과 경쟁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직원으로서 성장하고자 합니다.


-


인사담당자들이나 취준생들이나, 자기소개서 쓸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 중에 하나를 나는 하고말았다. 실패경험으로 전년에 지원했던 회사에서 최종 불합격한 것을 적었다. 이것은 정말 불문율인데, 나에게 있어서 솔직하게 그 당시 내 인생 최대의 쓴맛이 A매치 금융공기업 최종 불합격이었어서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소개서는 소설이지만, 그래도 솔직함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실패경험으로 불합격 경험을 쓰지는 말기를 바란다.)


한편, 벚꽃은 만개했다 지기 시작했고, 4월도 지나고 있었다. 하나 둘씩 서류 지원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또 다른 시작을 감지했다.


5개 기업에 전부 서류합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진짜 이제 시작이었다.


K모 기업 서류 합격


S모 기업 서류 합격


또 다른 K모 기업 서류 합격



N모 기업 서류 합격



A매치 금융공기업 서류 합격


(다음)


<A매치 금융공기업 입사 공유의 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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