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의 나
벌써 3년 전, 2019년 2월에도 눈이 참 많이 왔었다. 인사팀, 재무팀 등이 모여 있는 행정동 꼭대기층 화장실은 참으로 멋진 뷰를 가지고 있었다. 눈이 흐드러지게 나뭇가지 위에 얹혀 그림 한 폭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날이면, 화장실에 조금은 오랫동안 머물렀다. 일하기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일도 물론 하기 싫었다.
신입사원으로서 사회와 직장의 쓴맛을 보던 2월 말, 그리고 3월 초. 나도 나지만,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병원 행정직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3~40대가 젊은이 소리를 듣는 직군이어서, 나 같은 20대 중반은 베이비 취급을 받곤 했다. 그나마 나의 지근거리에서 일하던 사람 중에서 나잇대가 좀 맞았던 사람은 동기를 제외하곤 나보다 세 살 위인 계약직 직원뿐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일 저 일 다 하다가, 병원 총무팀 계약직으로 일하며 나름의 커리어 플랜을 짜고 있던 터였다. 여기서 일한 지는 10개월 정도 되었던 터라, 퇴직금을 받고 나가기 위해 2개월만 더 꾹 참을 것이라 했다. 그 형이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병원 계약직은 어차피 나갈 사람이라, 제대로 대우도 못 받고 일이란 일은 다 한다. 정규직이면 몰라도.
그럼에도 그는 병원 일이 잘 맞고, 하고 싶다고 했다.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것이 지겨울 뿐. 그래서 그는 병원 행정 쪽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기 위해 여러 유명한 병원들에 서류를 내고 있던 참이었다. 물론 잘 빠진 대졸자들과 경쟁하면 쉽지는 않겠지만, 병원행정 커리어가 어느 정도 쌓이면 이 또한 어딘가에서 '먹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더러워서 못 해먹을 일을, 그는 내가 병원을 그만둘 때까지도 묵묵히 했다. 그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투덜대면서도, 그는 맡은 일을 열심히 했다. 사회생활 좀 배우라는 윗사람들의 꼰대 같은 꾸지람에도, 그는 열심히 했다.
그 형과 지내면서 느낀 점이 있다. 하고싶은 게 있으면 그 쪽으로 계속 움직여본다는 것이다. 계약직은 잠시 굴러왔다 나가는 돌 같은 존재일지언정, 내가 원하는 곳 근처에서 계속 굴러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자국이 패이기 마련이다. 쉽게 가능한 일이라면 그럴 이유가 하등 없겠으나, 그는 그 어려운 길을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계속 오가더라.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싶으면 자신만의 해소법으로 잘 털어버린다. 물론 참다 참다, 아까 그 사회생활 좀 배우라던 꼰대 같은 상사에게 한 마디 하기도 했다. 하지만 꿀릴 게 없어보였다. 이 곳 저 곳 또 굴러볼 심산이었나보다.
한편, 경직된 몇몇 윗사람들은 나를 이뻐했다. 명문대 출신에, 이 곳까지 와서, 행정 업무를 하는, 20대 중반의 남자 직원. 아저씨들은 본인 라인이라도 얻은 것처럼 든든해했고, 아주머니들은 젊은 남자 직원을 귀여워해주었다. 이 같은 스테레오타입 속에서 그들의 경직성은 때때로 나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몸이 안 좋은 친구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쓰고 온 다음 날에는, '친구 때문에 휴가나 쓰는, 사회생활 모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정식 출근시각보다 15분 정도 일찍 출근하다보면, '30분 일찍 출근해야 사회생활 잘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은 나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만큼, 윗사람들 앞에서 '어린 신입사원다운 어수룩하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나의 일처럼 느껴지게끔, 나를 타일렀다.
그들 덕분에 느낀 게 있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역시 하는 일보다 누구랑 일하느냐가 중요해, 같은 것들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깨달은 건,
나이든 사람들은 어수룩하면서도, 겸손하면서도, 똑똑한 놈들을 좋아하는구나.
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무언가를 느껴가고, 삭아갔다. 표면적으로는 8시 반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하는 평범한 대학병원 행정직 직원이었으나, 나는 주 1회 경제학 모의고사 스터디를 지속하고 있었고, 때때로 매력적인 공고가 뜨면 서류 지원이라도 해봤던, 취준생이기도 했다.
대학병원 행정직이 잘 맞아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잘 안 맞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 한 자리에 박힌 돌들 사이에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굴러들어온 돌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사회생활을 해보기 위해 졸업과 동시에 급하게 굴러들어온 곳에서부터, 나는 서서히 굴러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자국을 만들기 위해서.
(다음)
<A매치 금융공기업 입사 공유의 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