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의 나
2018년 12월 A매치 금융공기업 최종 탈락, 2019년 1월 대학병원 교직원 최종 합격이라는 정신없는 세월을 뒤로 한 채, 2019년 2월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 직장인으로서 아무튼, 출근을 시작했다.
내 인생 출근 첫째 날, 긴장과 설렘이 공존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 외에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떨려서 그랬는지.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출근을 하는데, 그 때 처음으로 직장인들의 공기를 체감했다. 대학생으로서 지하철을 타는 것과, 직장인으로서 지하철을 타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니. 철저하게 본인의 일과 그것의 대가인 돈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이들의 표정은, 상당히 생경한 것이었다.
역전(驛前)의 국화빵 내음을 뒤로 한 채, 나는 병원 입구로 들어갔다. 환자로서 외래를 위해 대학병원에 방문했을 때와 또 느낌이 다르더라. 확실히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이더라도 '내가 누구인가'에 따라 감각과 직관은 참으로 달라지는 것 같다, 고 생각했다. 환자로 진단받은 환자, 혹은 환자로 진단받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 혹은 그들을 모시고 온 보호자들, 을 지나쳐 나는 행정동 안으로 들어갔다.
맨 윗층으로 올라가니 인사총무팀 사무실이 나왔다. 모닝 커피 냄새가 진동했다. 원래 직장인들은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나? 지금의 나에게 모닝 커피는 무척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대학생 때는 아침에 커피를 마신 적이 딱히 없었어서 이 역시 생경한 장면이었다.
어떤 아저씨가 내 앞에 등장했다. 나보다 25살 남짓 많아보이는 분이 나를 테이블로 인도했다. 알고보니 그 분이 인사팀장이었다. 그땐 정신없어서 그냥 아저씨였다. 뒤이어 내 동기라는 사람도 등장했다. 나보다 4살 많은 형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준비를 하다가 아쉽게 고배를 마신 후, 대학병원 교직원으로 취직한 케이스였다. 나도 A매치 금융공기업 준비를 하다가 아쉽게 고배를 마신 후, 대학병원 교직원으로 취직한 케이스가 되었다.
이후 OJT(On the Job Training)가 시작되었다. 무려 한 달 반 동안. 나는 매일 같이 사무실을 전전하면서 해당 사무실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익혔다. 인사총무팀, 재무팀, 교육훈련팀, 심사평가팀, 관리팀, 교육수련부 등을 꾸준히 돌면서 대학병원 안에 수많은 행정 부서들을 돌았다.
겉보기에는 그냥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 정도로 생각되는데,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뒤에서 정말 많은 스태프들이 각자의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구나, 를 깨달았다. 마치 신체를 이루는 세포들처럼, 그들은 마치 대학병원의 세포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이를 대체할 사람이 없어보였다. 언젠가 인사총무팀 선배 직원 한 분이 나한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직원이 각자 1인분만 제대로 하면, 생각보다 별 문제가 없을텐데. 누군가가 자신의 영화를 위해서 1인분 미만의 역할을 하려고 꼼수를 부리는 순간, 직장이 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2, 3인분의 무리한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2, 3인분의 무리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직장에 지치고, 1인분 미만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대체 가능한, 쓸모없는 인력'이 되어가는 거라고. 이러한 트렌드가 계속되면 직장에는 쓸모있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거라고. 결국 근본적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 직장에는 필요하고, 그런 사람들로만 구성되어야 직장 스트레스 같은 것도 줄어드는 거라고.
내가 가고자했던 A매치 금융공기업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그 때 생각했다. 겉보기에는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 정도로만 생각되겠지만, 그 안에 그 비전과 미션을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그들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읽는 수준에 그쳤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것이다.
비전과 미션보다 눈여겨봐야할 것은,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1인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고 하면 거창할까. 인식의 중심을 '직장'이라는 단편적인 대상으로부터,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주체로 전환하게 된 데는 대학병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직장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 를 넘어서, 직장을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느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을 동료 직원들이 선호해줄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미래의 나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순간이다.
(다음)
<A매치 금융공기업 입사 공유의 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