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메디아 Jan 11.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을 받고 일했다

2019년 1월의 나

시험의 연속


자기소개서를 줄창 써내려가니 어딘가에 붙긴 붙더라. 지금 서류 합격한 곳들을 나열하라고 하면, 한두곳 밖에 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무지성 서류지원을 이어갔다. 이 회사가 나한테 유익한지 아닌지조차 까먹을 만큼, 내 머리보다 내 손가락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주말은 나의 여가시간이 아닌 필기시험을 보는 날이었고, 평일은 나의 근무시간이 아닌 면접을 보는 날로 변해갔다. 자소설닷컴에서의 무지성 지원을 이어가다 보니, 어떠한 교육 스타트업(이하 A 기업)의 인턴 겸 사무보조 직무에 덜컥 합격을 하기도 했다.


� : XXX씨, 안녕하세요. 여기는 ***라고 하는데요. 저희한테 서류를 넣어주셔서요. 혹시 내일이나 모레 편하실 때 면접 보러 오시겠어요?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나는 A 기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지, 어떤 일을 나에게 시킬 예정인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마 A 기업 매니저 분도 내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서로 모르니까, 정보의 대칭은 이룬 셈이다.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 위해 담당자가 안내했던 시간에 맞추어 A 기업 본사에 찾아갔다. 건물은 아기자기했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듯한 곳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5층까지 등산하듯이 올라갔다. 마침 담당자 분이 나를 맞아주셨고, 우리는 지원자인 나의 신상과 재무 분석 능력에 대한 토크를 진행했다.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딥한 회계능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고, A 기업에서 런칭하는 시장/기업 분석 서비스에 담길 raw content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회계/재무 분석 결과를 참고하여 이 기업의 SWOT 분석 및 관련 이슈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됐다.


지원자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 합격했다.


� : 혹시 어디 준비하시는 지 여쭤봐도 돼요?

�‍♂️ : 아, 저는 금융 쪽 준비하고 있씁니다. 금융공기어..ㅂ...

� : 오,,! 금융,,! 그러면 금융회사들 분석 컨텐츠 작성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 받고 일을 하게 된 순간이다.


안 풀린다 안 풀려


그렇게 나는 약 3주 간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와 각종 필기시험/면접 준비를 병행했다. 여기서 '각종'이란, A매치 금융공기업 준비를 위한 전공시험이 아니라, 각 기업들에서 요구하는 별의별 시험부터 별의별 면접까지 다 준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NCS, 시사논술, 일반논술에 50대 아저씨 아줌마들을 만족시킬 만한 면접 스킬 등등 모든 것에 다 벼락치기를 실시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심히 일했다. 온갖 증권/보험 회사들을 분석하면서 업계가 많이 힘들구나 쯧쯧~ 하며 혀를 차보기도 하고, 데드라인 안에 일을 얼른 끝내서 선배 매니저님한테 급하게 자료를 보내보기도 하고, 같이 점심 먹으면서 문과 취업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해보기도 하고, 여튼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지성의 서류지원이 나에게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해준 듯보인다. 분명히 무지성이었지만, '가리지 않는' 잡식이 나에게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시사점을 안겨다줄 때가 있다. 교육 스타트업에서 내가 사무보조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그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서 사무보조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1. 노동의 대가로 월급을 받는 일의 즐거움

    2.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는 것의 고됨

    3. 출근하기 싫어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

    4. 동료 직원들과 일을 하며 친해지는 과정

    5. 꿈에 그리던 A매치 금융공기업에 더더욱 가고싶어짐 등


을 느꼈다.


이는 책상머리에 앉아 시험을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나에게 유익했다. NCS를 풀다 틀린 내 문제를 쳐다보는 것보다, 모니터 앞에서 내 일을 해내는 기쁨을 체험하는 것이 더 뜻깊었다고 자부한다. 지금도 나는 후배들에게 '공부만 하지 말고, 일을 해봐라'라고 조언한다. 꼭 정식 인턴이 아니더라도, 나처럼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이라도 해보고 본인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무지성 서류지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A매치 금융공기업 입사 공유의 건 2>

이전 03화 자소설 작가 등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