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의 나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단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50개가 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각 기업 앞으로 제출했다. 이름 모를 중앙회부터 협회, 대학, 병원, 공공기관 단기행정보조직에, 통신사, 증권사, 자동차 기업까지, 그냥 당시에 올라왔던 공고 중에 내가 붙을 만한 기업에는 다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여타 A매치 금융공기업 지원자들의 전형적인 의사결정과는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A매치 금융공기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하반기 탈락시 상반기에 희소하게나마 뜨는 공고의 동아줄을 붙잡거나, 1년 정도 또 다시 준비하여 하반기 공고를 노린다. 하지만 나는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A매치 금융공기업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것이 환상이 되면 내가 아무리 좇아도 잡지 못하는 무지개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고, 막상 내가 이 환상에 도달했을 때 그만큼 현실적인 실망도 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나에게는 수많은 선택지들 중 조금은 더 매력적인 선택지 정도에 불과하게 된다. 만약 그 선택지가 나에게 선택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는 다른 선택지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A매치 금융공기업이 무심하게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으므로 플랜 A는 제끼고, 일단은 나와 직무적합도가 높아보이는 기업들에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플랜 B 실행에 착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안을 고려하기.
대안. A매치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하나의 섹터만을 고집하면서 그것을 향해서만 달리는 경주마가 되어버리면, 다른 길을 차마 생각하지 못한다. '다른 생각 말고 이 길에 집중해야지.'는 당연히 필요한 자세이지만, 맹목적으로 이에 몰두하는 것은 주식을 한 종목만 투자해서 상한가를 기대하는 일처럼 risky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투자처에 분산투자하듯이 나의 소중한 진로도 여러 대안을 통해 포트폴리오화해야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본인을 돌아봐야 한다. 본인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반성하면서 본인의 성질에 직면해야 하고, 이를 자기소개서에 분명히 녹여내야 한다.
이 2가지가 모두 해당되는 직무라고 생각될 때, 나는 고민없이 바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소서가 어느 날에는 자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진짜 이런 일을 한 사람이 맞나?' 결코 거짓을 적지는 않았다. 소설도 현실의 반영이니까. 하지만 공장장처럼 찍어내다보니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 맞나' 싶었다.
그러나 한편, 나는 그저 자소설 작가로 등단하기 위해서 이 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직업, 직장, 직무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이를 되뇌이며 내적으로 발생하는 현타를 제어할 수 있었다. 자소설로 느껴질 정도로 나의 이야기가 쉽사리 텍스트화되는 것은, 결국 목적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노동시장에서의 나의 가치를 시그널링(signaling)하는 것은 나의 인간적 가치와 무관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열심히 자소설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다음)
<A매치 금융공기업 입사 공유의 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