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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Apr 15. 2022

필기 시험

2019년 5월의 나

병원 직원식당의 어느 날 아침 식사, 단돈 2000원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2019년 상반기 5군데의 직장에 지원서를 냈고 모든 곳에서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5군데의 필기가 남았고, 그 이후에는 몇 차례의 면접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나의 걱정은 '필기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보다, '필기 시험에 붙어도 평일에 있을 면접에 내가 참여할 수 있을까?'에 있었다. 나는 대학병원 교직원이었고, 월~금 하루 9시간(점심시간 1시간 포함)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였다. 그런 내가 필기 시험에 붙는다 한들, 시간을 내서 갈 수 있을까. 당시 내가 갖고 있었던 연차일수는 총 3일이었다. 어떻게든 쪼개서 쓴다 해도 3~4번의 면접에 참여할 수는 있었는데, 면접날에 내가 자유롭게 연차휴가를 쓸 수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을 하다가도, '필기 붙고 나서 고민하자^^'는 결론이 나곤 했다. 필기 붙고 나서 해도 되는 '지나치게 사전적인' 걱정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좀 더 생산적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필기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지?


그렇다.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일주일에 (야근 없으면) 40시간을 일해야 하는 근로자였고, 퇴근하고 나면 지쳐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물론, 주 1회 경제학 모의고사 스터디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그것은 철저하게 '혹시 몰라 대비하는 수준'이었으므로 본격적인 준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5군데 모두 시험 스타일이 달랐다. 경제학을 공부했던 베이스를 바탕으로 어찌저찌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각 기관 맞춤형 시험 준비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박하게 다음과 같이 준비했다.


1. 주 1회 모의고사 스터디 참여 -> 하던 거 잘 하기

2. 출퇴근길에 작년에 정리해놓았던 경제학 노트 일독 -> 기억 되살리기

3. 해커스 NCS 구입 후 어려워보이는 문제만 풀어보기 -> NCS 대비

4. 어떻게든 인터넷을 뒤져서 시험 후기 찾아보기 -> 마음의 안정 찾기

5. 금융 관련 시사 이슈 놓치지 말기 -> 논술 대비


A매치 금융공기업의 경우에는 작년부터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작년과는 다른 금융공기업이더라도 어느 정도 필기시험에 대한 감이 잡히기는 했다. 반면, 나머지 4개의 기업의 경우에는 당최 어떤 방식으로 시험을 보는지 감이 안 왔다.


그래서 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최소한의 보편적인 준비 방식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NCS 교재를 사서 '이런 문제가 나와?' 싶은 것만 골라서 좀 풀어보고, 시사 이슈를 매일 같이 찾아보면서 내 생각을 정립해보기 시작했다.


이런 루틴을 갖고 3~4주 정도 준비를 계속해나갔고,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총 5군데의 필기시험을 모두 치렀다. 간략하게 후기를 쓰면 다음과 같다.



~


1. A매치 금융공기업 필기 (4.27)


제일 먼저 본 시험으로, 상반기에 치러진 A매치 금융공기업 필기시험이라서 결시율이 한 자리에 불과했다.


(보통 하반기의 경우에는 A매치 금융공기업들이 하루에 합동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서류를 여러 군데 붙은 지원자라도 실제로 필기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곳은 한 군데 뿐이다. 따라서 결시율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상반기는 모든 A매치 금융공기업들이 공고를 띄우지도 않을 뿐더러, 합동으로 시험을 보지는 않으므로 결시율이 낮다.)


그래서 더 떨렸다이 괴물들이 얼마나 시험을 잘 보려고 이렇게 다들 몰려왔나 싶었다. '괜히 대학병원에 취직하는 바람에 준비도 잘 못하고... 밀리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작년에 열심히 했으니까, 전념해서 수험경제학에 대한 감을 잡았으니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전달했다. 전공 필기시험과 NCS를 모두 치르고 나왔을 때, 뭔가 허탈하면서도 개운했다. 하지만 아직 4군데의 필기시험이 더 남아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기도 했다.


시험 문제를 다 풀지는 못했다. 꼬리 문제 2~3개 정도 날렸고, 무엇보다도 계산기를 안 가져가는 바람에 마지막 답을 깔끔하게 구하지 못한 부분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계산 과정을 자세히 적으려고 노력했다. 시험 문제의 난이도는 평이한 편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끝나고 나오는 길에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오픈카톡방에서 다들 다 풀었다고 말할 때, 조용히 있었다. 다 못 풀어서.


2. N모 기업 필기 (4.28)


A매치 금융공기업 필기를 본 바로 다음 날 치렀던 시험으로, 사실 전날 지쳐 쓰러져서 자는 바람에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지는 못했다. 전공 필기에다, NCS에다, 인성 검사에다, 금융 논술까지 보는 시험이었기 때문에, 끝나고 나서 진짜로 녹초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 날에 대학병원 출근을 해야 하다니, 인생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괜히 이직한다고 설쳤나 싶었다.


전공 필기가 경영/경제가 뭉뚱그려서 나오는 방식이었는데, 이때 유독 금융공기업 경제직렬이라면 많이 접해봤을 만한 문제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내가 좀 이득을 본 듯하다. 그래서 시험장을 나오면서는, NCS 점수만 이상하게 안 나오면 붙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시험 보기 1시간 반 전에 어느 카페에서 NCS 문제 유형에 뇌를 적시기 위해 급하게 풀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나한테 와서는 갑자기 '5분만 NCS 교재 볼 수 있을까요?'라고 대뜸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도 한시가 급했지만, 이타적인 마음씨를 살려 빌려드렸다. 나름 급하게 보시더니 나한테 돌려주셨고, 시험장 근처였어서 시험장으로 같이 이동했다.


그는 런던 유수의 정치경제대학에서 석사를 따고 돌아왔는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취업 전선에 뛰어든 케이스라 했다. 속으로 '너무 오버스펙 아닌가?' 싶으면서도, 매몰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각자의 동기를 품은 채 취업을 치열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 분은 합격했을까 모르겠다.


3. S모 기업 필기 (5.4 오전)


이 날에는 시험이 오전/오후 2개가 몰려있었다. 만일 시험 시간이 같았으면,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됐는데, 다행히 한 기업은 오전, 한 기업은 오후에 시험이 잡히면서 둘 다 응시할 기회를 잡았다.


이 기업은 특이하게 경영/경제/민상법을 필기시험으로 출제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영과 민상법은 전혀 모른다. 그래서 경제 문제만 일단 100% 다 맞히자, 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경영은 그래도 그럴 법한 보기를 정답으로 찍었는데, 민상법은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서 4번으로 다 찍었다. 현타가 심하게 왔다.


4. K모 기업 필기 (5.4 오후)


오전에 현타를 심하게 받고, 점심을 가볍게 먹은 뒤 오후 시험장으로 갔다. 특이하게 엄청 큰 대강당 같은 데다가 책상을 쫙 깔아놓았다. 시험장이 학교가 아닌 적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이 기업은 금융에 특화된 기관이라고 보기는 살짝 어려웠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체 출제한 NCS 비스무리한 시험과 인바스켓 시험을 출제했다. 인바스켓 시험은 쉽게 말해서 3~4가지 실무 관련 과제를 즉석에서 주고, 그거에 대한 답안을 빠른 시간 안에 적어내려가는 시험이다. 경영/경제 필기시험처럼 아카데믹하지 않고, 정말 실무스러운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대비할 수가 없다.


NCS 비스무리한 시험은 그냥 NCS 풀듯이 풀었고, 인바스켓 시험은 진짜 업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임했다. 쌩신입은 할 수 없는, 직장에서 일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보여주겠다, 라는 당찬 각오로. 결국 다 풀긴 했는데, 뭔 내용을 썼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5. 또 다른 K모 기업 필기 (5.11)


안타깝게도 가지 못했다. 몸이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열에 편도염이 겹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몸이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가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그 때는 자책을 많이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5군데를 준비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구나, 그 때 새삼 느꼈다.


~


길게 주절주절 썼지만,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지속되었던 나의 필기시험 스토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첫 취준이면 이렇게 준비할 수는 없다. 2018년에 A매치 금융공기업을 준비하면서 수개월간 몸 상해가면서 준비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2019년 상반기에는 좀 더 급박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점점 여름이 찾아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비정규직 간호사와 약사, 영양사를 채용하는 일을 보조하고 있었고,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해 의과대학 교수님들에게 감사장을 전달하는 일을 기획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혼자 여유를 찾다가도, 퇴근 후 만원 지하철을 타고 털레털레 집에 오다가도,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다행히도, 좋은 소식들이었다.



A매치 금융공기업 필기 합격


N모 기업 필기 합격


S모 기업 필기 합격


K모 기업 필기 합격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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