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를 하고 있다는 이 남자, 만나도 괜찮을까.
철이의 소개팅 아닌 소개팅으로 알게 된 ‘어깨남’을 다시 만난 건 첫 만남 이후, 한 달 만이었다. 처음 만나고 돌아온 며칠은 그가 궁금했었다. 이전 남자친구에게 느꼈던 연애 감정을 정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럴 일인가, 그 정도로 얄팍한 감정이었나 스스로를 경멸하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궁금했다. 그 사람을 알고 싶었다.
‘저 이제 곧 도착해요.’
지난번처럼 우린 홍대역 5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오늘은 내가 그에게 밥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평소 즐겨 가던 봉주르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런 분위기의 음식점은 낯선지 한참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갓 세상에 나온 사람처럼 모든 것을 신기하게 둘러보고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순수한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일이 많이 바빠요?”
“아, 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라, 갑자기 약속이 잡히면 다른 일들을 미루게 돼요. 그래서 누나한테 미안했어요. 저 무슨 일 하는지 아세요? “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네트워크 마케팅’ 혹은 ‘다단계’
20대 초반의 사회생활도 학원 강사 일이 전부이며, 주변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 단어들이 내게는 이름 모를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제가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걷는 게 좀 불편해요. 아르바이트도 하긴 했었는데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친구가 이 일을 하고 있었고, 저도 빨리 성공하고 싶어서 하고 있어요.”
스물셋, 어린 나이에 성공을 말하는 그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누군가는 뜬구름 잡는다고 비웃을 수도 있었겠지만 진솔된 표정에 덤덤한 어조로 말하는 그라면 정말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을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에게는 권유하지 않았으면 해요.”
내 말에 그는 손사래 치며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줬고, 나는 편견 없이 귀 기울여 주었다.
“누나, 이거 줄게. 아 해봐. “
식사를 하며 말을 편하게 하기로 하자,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연어를 들어 내쪽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누군가가 나에게 음식을 먹여 준 적이 있었던가. 순간 부끄러웠지만 어른인 척, 그가 건네준 음식을 받아먹었다. 다정한 순간이었다.
“앞으로는 더 자주 연락할게. “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하루에 50개 이상의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그는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들어 주었다.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고, 우리의 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