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오늘도 나는 비겁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부모님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두 분 모두 갓 성인이 된 나이에, 어려운 살림에, 서툰 삶 속에서, 어렵게 세 자매를 키워냈다. 그걸 너무 일찍 알았던 우리는 스스로 자라는 방법을 터득했고, 아이처럼 자라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심하게 다투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방 안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엄마가 거실에서 나에게 소리치고 있던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평생 얌전하고, 착하게 자라 온 내가 그날은 엄마에게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는데, 지금도 내내 그 말이 오래된 체기가 되어 걸려 있다.
“그러니까 누가 낳아 달라고 했어? 나도 태어나기 싫었다고. 이렇게 사는 거, 진짜 지긋지긋해.”
해선 안 될 말이었다. 그리고 말을 뱉는 순간 엄마에게 분명히 상처가 될 걸 알고 있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그리고 그날,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그때 엄마 나이 스물 중반. 그런데도 착한 우리 엄마는 나에게 흔히들 말하는
“너도 나중에 시집 가면 너 같은 딸 꼭 낳아. 그러면 내 마음 알 거야.”
라는 모진 말 따윈 하지 않았다. 그저 울었다.
그래서였나, 나는 정말 예쁘고 착한 아이를 낳았다. 웃음이 많고, 사랑이 가득한 아이. 이 아이가 자라서 내가 했던 말을 나에게 한다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때의 엄마처럼 아무 말하지 못할까.
때때로, 잘못했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런데도 오늘 또 엄마에게 모질게 대했다. 아이를 임신한 이후부터 엄마에게 부리던 짜증이 오늘도 역시나 이어졌다. 엄마는 이십 년도 더 지난 그날처럼 오늘도 모진 말을 뱉지 않는다.
“엄마 미안해.”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에게 기대 버리면 버텨 온 내 감정들이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앞으로 살면서 밤마다 얼마나 숱한 후회를 끌어안고 살아야 할까. 내가 생각해도 난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