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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Jun 04. 2023

자리 잡으면 그땐 너랑 결혼하고 싶다

비혼주의자였던 우리는 결혼을 꿈꿨고


바쁘게 일했고, 뜨겁게 사랑했던 그와 나는 어느새, 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했고 처음 34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던 나의 수업 스케줄은 입사 6개월 만에, 더 이상 비집고 들어 올 수 없을 정도로 수업이 차 버렸다. 그로 인해 오후 1시부터 밤 10시 혹은 11시까지 수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이 다 되어 갔다.


"힘들다."


입으로 힘듦을 토해내며 홍대에 도착하면 나를 기다리는 그와 짧게는 십 분, 길게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겨 가며 함께 했다.


그와 카페 한편에 자리 잡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 비혼주의자였던 거 알지? 너도 그랬다고 했었고."

"응. 그랬지. 그런데 그건 왜?"

"혹시 아직도 그래? 아직도 결혼은 안 하고 싶어?"

"음. 글쎄? 예전에 죽어도 싫어 그랬는데 지금은 너 만나고 바뀌고 있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침묵했다. 조금은 뜬금없는 대화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 봤는데 난 너라면 결혼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결혼하고 싶어. 내가 더 열심히 살 테니 자리 잡으면 그땐 결혼하자."

"좋아!"


세상에서 가장 담백했던 프러포즈와 망설임이 필요 없던 대답. 영화 속에서 숱하게 봐 왔던 로맨틱함은 없었지만 떨리는 목소리에 담겨 전해지던 그의 진심에 나는 그와 결혼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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