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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성 너머의 음악

퍼니호의 음악 세계

by Komponist
fh.png Brian Ferneyhough, © Colin Still


브라이언 퍼니호(Brian Ferneyhough, 1943-)는 음악적 복잡성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기보법적 난이도나 연주상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음악의 존재론적 위치와 청취자의 인식 구조 자체를 탐구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인물이다. 그는 "뉴 컴플렉시티(New Complexity)"라는 용어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작곡가이며, 그가 구축한 음악 세계는 단순한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청취자와 연주자의 지각과 수행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극단적인 디테일과 다층적 폴리리듬, 그리고 예상치 못한 텍스처 변화로 인해 종 "해석 불가능한 구조"로 인식되지만, 퍼니호가 실제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소리 자체의 조직이 아니라, 우리가 소리를 조직하는 방식, 즉 음악적 형식과 청취자의 지각적 경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퍼니호의 철학은 음악을 하나의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각적 구성으로 간주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는 음악적 객체를 하나의 완결된 존재로 상정하는 것을 거부하며, 음악이 시간 속에서 지각되는 방식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퍼니호의 음악에서 복잡성은 단순한 기술적 난이도가 아니라, 청취자의 인식과 경험을 유동적으로 만드는 불안정성의 도구로 작용한다. 또한 음악의 복잡성을 단순히 계산적인 알고리즘을 통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음악 이론에서 복잡성은 일정한 구조적 위계를 전제하며, 해당 위계를 해석하는 것이 분석의 출발점이 되지만 퍼니호는 이러한 위계적 해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음악을 구성한다. 그는 음악적 요소들의 위계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며, 특정한 지각적 프레임에 고정되지 않도록 만든다. 그의 작품 La Terre est un homme에서 이러한 원칙이 명확하게 구현된다.


이 작품은 거대한 음향적 밀도와 극도로 미세한 리듬적 차이를 혼합함으로써, 청취자가 특정한 음악적 패턴을 지속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청취자는 음악적 객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고, 대신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각적 상태 속에서 음악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전략은 비결정적 인식의 개념과 연결된다.


퍼니호의 음악은 특정한 형식적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으며, 음악이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비결정적이고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한다. 즉, 그의 음악은 듣는 순간마다 다르게 구성되는 비결정적 대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퍼니호는 음악적 시간을 단순한 연속적 흐름이 아니라, 비선형적이고 역설적인 개념으로 다룬다. 그는 특히 기억과 기대의 상호작용을 교란하는 방식으로 시간성을 조작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음악을 듣는 과정에서 과거의 요소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한다. 하지만 퍼니호의 음악에서는 이러한 기억과 예측이 무효화되며, 각 순간이 독립적인 사건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의 작품 Mnemosyne에서 음악적 사건들이 논리적인 인과관계 없이 배치되며, 시간이 점점 압축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음악적 흐름을 지각하는 기존의 방식과 충돌하며, 청취자가 시간의 흐름을 하나의 촉각적 질감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퍼니호는 이를 "시간의 촉각성(tactility of time)"이라고 표현한다. 즉, 음악적 시간이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감각될 수 있는 실체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시간 개념은 침머만(Bernd Alois Zimmermann)의 "시간의 구체(Sphäre der Zeit)" 개념과도 연결된다. 침머만은 음악이 다양한 시간적 층위를 동시에 경험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퍼니호 역시, 음악적 사건을 선형적으로 배치하지 않고, 시간 속에서 충돌하는 방식으로 구성한다. 이러한 전략은 음악적 사건의 탈맥락화 개념과 연결된다. 그는 음악이 단순한 발전의 과정이 아니라, 각 순간이 독립적인 사건으로 작용하며, 그 자체로 완결된 의미를 형성해야 한다고 본다.




퍼니호의 또 다른 음악적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발전 방식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점이다. 그는 음악이 갑작스러운 도약, 단절, 그리고 초점의 급변을 통해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퍼니호는 우리가 익숙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 중 하나라고 본다.


많은 현대음악은 점진적인 변형을 통해 청취자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지만 퍼니호는 오히려 급격한 변화와 불연속성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창출한다. 이는 펠드만(Feldman)의 후기 작품들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펠드만은 미묘한 변화를 반복적으로 쌓아가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기법을 사용했다. 퍼니호 역시, 청취자가 지속적으로 불확실성과 마주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곡한다. 퍼니호의 음악은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식 구조를 깨뜨리고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창출하는 과정이다.


그의 작품 Terrain은 먼저 후반부를 완성한 후, 전반부를 나중에 구성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이를 통해 기존의 출발점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되는 음악이라는 개념을 뒤흔들고, 구조적 긴장을 조성했다.




브라이언 퍼니호의 음악은 단순한 난해한 기보법이나 기술적 도전으로 축소될 수 없다. 그의 음악이 추구하는 것은 음악의 존재 방식 자체를 전복하고, 지각적, 존재론적, 미학적 문제를 음악을 통해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는 형식과 내용을 분리할 수 없으며, 음악이 단순한 표현의 매개체가 아니라 청취자의 지각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소리와 의미가 어디에서 발생하며,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구성하는지를 다시 묻는 철학적 실천이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일관된 자아를 유지한다고 믿지만, 퍼니호는 이를 와해시키며 우리 자신이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형되는 인식의 흐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음악적 형태로 구현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듣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각 과정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유동적인지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음악은 단순히 감각적 경험의 대상인가, 아니면 우리가 현실을 구성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한 형태인가? 음악적 객체는 실재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지각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환영인가? 퍼니호의 음악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그것을 단순한 개념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과정 자체로 실현한다.


이러한 점에서 퍼니호의 음악은 단순한 현대 음악의 실험이 아니라, 예술이 어떻게 지각을 조직하고, 인식을 변화시키며, 존재를 재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명확한 결론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끊임없는 질문과 불확실성을 통해, 음악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존재와 인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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