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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속에서 태어난 자유

구바이둘리나의 음악 세계

by Komponist
gubaidulina_sofia_c_peter-fischli.jpeg Sofia Gubaidulina, Photo: Peter Fischli



며칠 전 소피아 구바이둘리나(Sofia Gubaidulina, 1931-2025)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소련 시대의 검열과 탄압을 견디며 창작을 이어갔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어법을 확립했다. 그녀가 남긴 음악은 단순한 사운드가 아니라, 역사적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존재의 기록이었다.


그녀의 음악은 영적이고 신비적인 요소에서 영감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한다. 그녀의 음악은 종교적, 문학적 상징이 풍부하게 담겨 있으며, 정교하게 다듬어진 동시에 감성적인 특성을 지닌다. 또한, 고도로 복잡한 음색과 단순한 악기적 음색이 공존하고, 반음계적 진행과 삼화음적 작곡 방식이 병치되며, 생동감 넘치는 선율적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구조적인 측면을 깊이 있게 고려하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그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상징적 의식, 시간의 본질, 그리고 조화적, 부조화적 리듬의 개념이다. 그녀를 추모하며, 그녀의 음악세계를 간략히 조명하고자 한다.




구바이둘리나는 알프레드 슈니트케(Alfred Schnittke), 에디손 데니소프(Edison Denisov)와 함께 "러시아 현대 음악의 위대한 트로이카"로 불린다. 그러나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예술적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던 시대였다. 소련 당국은 음악을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사용했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미학적 기준을 강제했다.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은 "부르주아적 형식주의"로 간주되어 금지되었으며, 그 결과 구바이둘리나와 그녀의 동료들은 공식적인 연주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검열 속에서도 음악적 탐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이들은 모두 당시 소련 당국으로부터 검열과 탄압을 받았지만 국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작곡가들이다. 그러나 세 작곡가의 음악적 철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데니소프는 고전적 의식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음조적 재료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음향 구조 속에서 질서를 찾았다. 슈니트케는 후기 고전적 의식을 가진 작곡가로, 기존의 음악적 재료를 초월하여 스타일적 다원주의(stylistic pluralism)을 시도했다. 그는 역사와 스타일을 한데 모아 하나의 거대한 구체로 보고, 그 안에서 상이한 음악적 요소들이 융합되는 방식을 탐구했다.


구바이둘리나는 자신의 음악적 태도를 헤겔(Hegel)의 인식론적 체계와 연결하여 설명했다. 헤겔은 고전적 의식과 후기 고전적 의식을 구별하며, 전자는 진리를 재료 자체에서 찾고, 후자는 그것을 초월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으나, 구바이둘리나는 이 두 가지 유형과는 별개의 길로 나아갔다. 그녀는 고대적 의식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진리가 단순히 물질 속에 있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 자체 속에서 상징적으로 중첩되는 층위를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은 개별적인 음향적 요소들이 단순한 연결망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요소가 하나의 기호로 기능하며,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철학을 더욱 명확히 하면서,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 기법을 결합하는 접근법을 확립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Offertorium이다.


이 작품은 바흐의 Musical Offering 주제를 점진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차용된 주제는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생성하는 상징적 재료로 작용한다. 이는 단순한 모티브의 변형이 아니라, 음악적 시간 속에서의 의미의 확장과 전이를 가능케 한다. 구바이둘리나는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음악적 전통과 현대적 실험이 어떻게 변증법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은 단순한 소리의 연속이 아니다. 그녀는 시간을 창조하는 행위로서의 음악을 사유하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했다. 그녀의 작품에서 시간은 선형적 진행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반영하는 층위적 구조를 가진다.


Stimmen... Verstummen... 작품에서 그녀는 작품의 중간에 약 40초간의 침묵을 삽입한다. 그러나 이 침묵은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지휘자의 몸짓을 통해 음악적 리듬이 창출되는 공간이 된다. 즉, 침묵조차도 시간적 흐름 속에서 의미를 지니며, 이는 존재론적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존재를 시간 속에서 이해했듯, 구바이둘리나 역시 음악적 시간을 단순한 연속적 흐름이 아닌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근원적 층위로 이해한다.


구바이둘리나는 단순히 서구적 현대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및 타타르 전통 음악, 종교적 상징, 수학적 원리를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녀는 이러한 시간의 개념을 다양한 수열, 황금비 등을 통해 구체화한다. 피보나치 수열과 같은 보편적 원리를 통해 그녀는 음악적 시간과 조화의 본질적 관계를 탐구한다. 이는 우리가 듣는 리듬과 구조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자연과 존재의 본질적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구바이둘리나는 리듬을 단순한 박자나 단위적 반복이 아니라, 형식적 리듬으로 이해했다. 그녀의 음악에서는 리듬이 단순한 시간적 배열이 아니라, 음악적 존재가 형성되는 본질적 방식으로 기능한다. 그녀는 조화적인 리듬(consonant rhythm)과 부조화적인 리듬(dissonant rhythm)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관계를 구체화한다.


조화적인 리듬은 존재론적 안정성을 가지는 방식이다. 반면, 부조화적인 리듬은 무작위적인 충돌이 아니라, 해결에서 먼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구바이둘리나는 단순한 박자 구조를 넘어 리듬 자체가 음향적 질서를 형성하는 원리를 탐구한다. 이러한 방식은 표트르 메슈차니노프(Pyotr Meshtshaninov)의 음악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기존의 조성 체계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았으며, 구바이둘리나는 그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음악적 위치를 더욱 명확히 정의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음향적 실험이 아니라, 음악이 어떻게 존재의 본질을 형상화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또한 그녀는 과거 음악적 형식과 소재를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했다. The Seven Last Words에서는 하인리히 슈츠(Heinrich Schütz)의 음악을, Alleluia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활용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전통적 요소를 단순히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적 구조와 리듬 속에서 변형하여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련 시절, 그녀는 강요된 침묵 속에서도 음악적 실험을 지속했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새로운 자유 속에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녀의 음악은 역사적 흐름을 재해석하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었다. 그녀가 남긴 음악과 사유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그녀의 상징과 시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구바이둘리나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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