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다양성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대학에서 현대음악을 접하는 학생들이 나의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고 있다. 유입 키워드 중 단연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12음기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회의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왜 대부분의 국내 현대음악 작곡 수업은 입문 단계로 12음기법을 중심에 두고 시작하는가? 20세기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임은 분명하지만, 이 기법이 곧바로 "현대음악의 시작점"인 양 전제되어버릴 때, 오히려 학습자는 음악적 상상력과 미학적 다양성을 경험하기도 전에 하나의 체계적 규범으로 먼저 갇히게 될 수 있다. 이는 단지 교수법의 문제를 넘어, 현대음악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현대음악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과연 특정한 기법의 습득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감각적 충격과 시대적 감수성, 그리고 예술적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12음기법은 물론 위대한 이론적 혁신이자 예술적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음악적 사유의 '시작점'으로 제시될 때, 그 자체가 일종의 형식주의적 교리처럼 기능하며, 학습자에게는 "따라야 할 규칙"으로, 교육자에게는 "가르쳐야 할 문법"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더욱이, 이러한 시작점 설정은 음악사를 기법의 진보로 환원시키는 식의 직선적 서사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조성 → 무조성 → 12음기법 → 총렬주의"라는 식의 진화론적 전개는, 실제로는 더 복잡하고 다원적인 음악사적 흐름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다. 따라서 12음기법은 반드시 그 구조와 의의뿐 아니라, 그 한계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함께 조명되어야 하며, 단일한 진보가 아닌 다양한 미학의 한 흐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12음기법을 이야기할 때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나 안톤 베베른(Anton Webern)과 같은 제2빈악파 작곡가들에 한정하여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12음기법은 특정 인물의 소유가 아니라,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개조되고 확장되며 심화된 거대한 미학적 언어이다.
20세기 초, 음악은 더 이상 조성이라는 보편적 질서에 안주할 수 없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거치며 극한까지 밀려난 조성의 경계는 무너졌고, 작곡가는 새로운 소리의 세계와 마주해야 했다. 이 새로운 세계는 이전의 조화가 아닌 해체와 재조합, 중심이 없는 세계에서의 새로운 질서 탐색을 요구했다. 그 위기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12음기법이며, 이는 단순한 작곡 기술을 넘어선 하나의 사유 체계이자 미학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 기법은 탄생과 동시에 곧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수학적이고 비인간적인 기계음악처럼 보였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전통적 감정 표현의 억압 장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12음기법은 단순한 원리의 체계가 아니라, 작곡가의 창의성에 따라 무한히 변형되고 확장될 수 있는 하나의 언어로서 다시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작곡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기법을 자기 언어 안으로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음악적 질서와 자유를 발견하였다.
12음기법은 처음에는 단지 12개의 반음을 중복 없이 특정 순서로 배열하고, 이를 전위, 반전, 역행, 역행반전 등의 기법으로 조작하는 방식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곧 작곡가와 이론가들은 이 단순 배열 이상의 수학적 구조와 조합 논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밀턴 배빗(Milton Babbitt)은 이러한 체계적 접근을 선도한 인물로, 조합론적 특성을 지닌 전조합적 헥사코드를 정의하고, 그것이 반전이나 전위된 형태와 결합하여 12음을 중복 없이 완성하는 방식을 탐구하였다. 이로써 음열은 단순히 선형적 진행이 아닌, 집합(set) 간의 조합을 통해 음향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체계적 도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배빗은 또한 12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절하는 77가지 분할 방법, 그리고 앨런 포르테(Allen Forte)의 223가지 음고 집합 분류 체계와 함께, 2차원 배열을 활용하여 복수의 음열을 중첩시키는 방식까지 발전시켰다. 이 배열은 수직적으로 다시 12음 집합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음열의 공간적 조합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엘리엇 카터(Elliott Carter)는 모든 음 간격을 포함하는 전간격 음열을 수직적 화성 구조로 확장하여, 이를 통해 12음 화음들을 구성하고, 나아가 자신의 후기 작품에서 핵심적인 화성 언어로 활용하였다. 카터가 구성한 12음 화음 중 일부는 프리츠 하인리히 클라인(Fritz Heinrich Klein)의 "모계화음(Mutterakkord)"과 일치하며, 알반 베르크(Alban Berg)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 Schließe mir die Augen beide와 Lyrische Suite의 음열을 도출하였다.
이렇듯 초기의 12음기법은 단순한 "12개 음의 순서"에 그치지 않고, 작곡가에 따라 음향 집합의 조합, 공간적 배열, 수학적 치환, 구조적 완결성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다. 이는 곧 12음기법이 음악의 형식과 내용이 완전히 결합할 수 있는 조직 체계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쇤베르크는 12음 음열을 선율과 화성을 동시에 구성하는 통일된 요소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작곡에서는 하나 이상의 음열 형태가 화성 진행이나 대위법적 구조에 분산될 때, 음열 내 인접하지 않은 음들 간의 예기치 않은 간격들이 노출되며 새로운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음열은 새로운 음향을 생성하는 유연한 구조가 되지만, 동시에 음열 고유의 간격 질서가 해체되는 한계도 내포하게 된다.
르네 라이보비츠(René Leibowitz)와 배빗등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다른 음열 형태들에서 secondary intervals 동기들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평과 수직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라이보비츠의 Trois Poèmes de Pierre Reverdy 제1악장은 이러한 전략의 훌륭한 예시이다. 배빗은 이와 같은 불변 동기(invariant motive) 선택이 리듬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브루노 마데르나(Bruno Maderna)는 마방진을 활용하여, 동일 시간대에 배열된 음열이 수직적으로 자동화된 화성을 생성하도록 하였고, 이를 통해 수평과 수직의 통합이 하나의 절차적 알고리즘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였다. 그의 제자인 노르마 비크로프트(Norma Beecroft)는 이 방법을 음렬 기법과 결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용하며, Tre Pezzi Brevi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는 에른스트 크레넥(Ernst Krenek)의 회전 배열 기법을 도입하여, 하나의 헥사코드를 회전시킨 다양한 버전들을 동일 시작음으로 전위하여 수평적 진행을 구성하였고, 이를 수직적으로도 활용하였다. 이는 그의 A Sermon, a Narrative, and a Prayer와 Variations(Aldous Huxley in memoriam)에서 확인되며, 후자의 작품에서는 장단조 화음이 포함된 수직적 구성도 나타난다.
12음기법의 고전적 전제는 모든 음이 동일한 빈도로 등장하며, 중심 음이나 기능적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적 평등"은 때때로 표현의 제약으로 작용했고, 작곡가들은 점차 이 구조 안에서 일부 음을 강조하거나 중심화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는 12음기법을 더욱 유연하고 개성적인 언어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는 음의 반복 또는 중복이다. 예를 들어, 루이지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는 Piccola musica notturna의 서두에서 음열의 특정 분절을 반복하며 멈춰 서는 방식으로 음에 비중을 두었다. 이는 전체 음열의 흐름 속에서 특정 음향 지점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낸다.
또한 여러 방식들 —12음보다 적은 수의 피치 클래스를 사용하는 음열, 음의 중복이 허용된 배열, 우르술라 맘로크(Ursula Mamlok)의 사각형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음열 배열, 루오 중룽(Luo Zhongrong), 토루 다케미츠(Toru Takemitsu)의 선법적 조각들의 삽입 등—을 통해 일부 음에 가중치를 부여하며 12음기법이 조형적으로 더욱 풍요롭고 유연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렇듯 12음기법은 더 이상 "완벽히 평등한 음"이라는 이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중복, 반복, 음계의 융합, 공간적 경로화 등을 통해 음열 내부에 위계, 중심성, 감정적 밀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유연성의 문제가 아니라, 12음기법이 감성과 직관을 품을 수 있는 언어가 되어간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쇤베르크는 하나의 작품에 단 하나의 음열만을 사용하는 통일성 원칙을 고수했지만, 다른 작곡가들은 오히려 복수의 음열을 혼합하거나, 음열을 반복적으로 변형하는 방법을 통해 재료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추구했다.
도널드 마르티노(Donald Martino)는 Concerto for Alto Saxophone에서 하나의 음열 분절을 다른 음열의 위치로 이식하거나, 서로 다른 음열 세그먼트를 얽히게 결합하여 독자적인 음열 시스템을 구성하였고,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는 음열의 세그먼트를 재귀적 구조로 재배치하는 기법을 실험하였다.
에른스트 크레넥(Ernst Krenek)은 Kette, Kreis und Spiegel 에서 동일한 음열을 반복적으로 동일한 순열 규칙에 따라 재배치하며, 음열의 점진적 변형과 구조적 반복성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이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오되 매번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음악 구조를 만들어낸다.
메시앙의 interversion 기법, 한스 옐리네크(Hanns Jelinek)의 순열 전개 등은 극단적인 예로, 하나의 음열 분절을 가능한 모든 배열로 확장함으로써 완전한 조합적 미학을 추구한다. 이러한 실험들은 12음기법이 단일한 정체성만을 강요하는 체계가 아니라, 무한한 조합 가능성을 내포한 유기적 시스템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음열은 더 이상 고정된 질서가 아닌, 변형과 재조합을 통해 스스로 진화하는 생명체와도 같은 성격을 획득한다.
초기의 12음기법은 무조성(atonality)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으나, 많은 작곡가들은 12음기법 안에 조성적 혹은 선법적 중심성을 삽입함으로써 "12음 조성"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니코스 스칼코타스(Nikos Skalkottas)의 Tender Melody 는 두 화음에 대한 도미넌트 기능을 수행하는 감7화음을 배치함으로써 기능화성적 흐름을 12음기법 안에 삽입한다.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는 Inscape 에서 반감7화음과 도미넌트7화음을 포함한 음열을 구성하여, 다이아토닉적 중심성과 기능의 암시를 수직적으로 형성하였고, 조지 펄(George Perle)은12음 선법의 개념을 제시하며 상승 및 하강의 5도 순환을 회전 및 중첩하여 위계화된 음열 체계를 구성하였다. 이는 전통 조성의 기능적 구조를 12음기법 내부의 자율적 원리로 전환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12음 음열이 반드시 전체 작품을 통제하는 원칙일 필요는 없다.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등은 12음 음열을 자유롭게 도입하여, 전체적으로는 조성적 또는 비체계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12음기법을 부분적 혹은 상징적 요소로 활용하였다.
브리튼은 Cantata Academica op. 62 의 8악장에서 12음 주제를 사용하지만, 이를 네 개의 장조 화음으로 반주하며 조성적 환경 안에 배치한다. 이어지는 푸가에서는 그 음열을 바탕으로 새로운 주제를 전개하되, 다이아토닉한 성격을 유지한 채 음열과의 느슨한 연계를 유지한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은 Candide 의 “Quiet”에서 두 개의 크로마틱 헥사코드를 겹쳐 만든 12음 음열을 지루함의 상징으로 풍자적 사용하면서, 아방가르드를 비판적으로 재현한다.
쇼스타코비치는 현악 4중주 12번 과 교향곡 14번 에서, 12음 음열을 확장된 반음계적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성의 울타리 안에서 정체성과 긴장을 유지한다. 이는 조성과 무조성, 체계와 직관 사이의 다층적 미학적 교차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헨체는 Boulevard Solitude 에서 도데카포니를 "자유롭고 새로운 세계"의 상징, 전통 조성을 "낡고 부패한 체계"의 상징으로 배치하며, 이 두 언어를 오페라 서사 안에서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12음기법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다. 한때는 전체주의적 체계로 간주되어 거부되었고, 또 한때는 절대적 질서로 숭배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중요한 것은 그 기법을 누가, 왜,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기법'인지, 아니면 작곡가의 세계관과 미학을 담는 철학적 구조인지 스스로 묻고 또 대답해야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기법이 자신에게 창작의 해방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한다. 제약 속에서 그는 자유를 발견했으며, 그 자유는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가 아니라, 질서라는 기반 위에서 실현되었다. 코플랜드는 다른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던 음악적 개방성을 12음기법을 통해 획득했다고 밝혔다. 이는 12음기법이 단지 규율이 아니라, 각 작곡가의 미학과 철학을 담아낼 수 있는 유연한 그릇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12음기법은 수많은 비판과 도전을 받아온 기법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이 체계를 기계적이며 인간의 정서와 멀리 떨어진 구성법이라 여겼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이 음악의 다양성과 개성을 말살하는 독단적 언어라고 비판하였다. 특히 불레즈와 같은 후기 총렬주의 작곡가들이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때, 음악은 감상자와 단절되었고, 청중의 공감보다 내부적 논리에 더 치중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게다가, 12음기법은 철저한 구조적 질서를 요구하기에, 직관과 감성, 지역성과 민속성, 예외성과 우연성을 포함하기에 다소 좁은 틀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는 특히 서구 중심적 미학의 강요로도 작용할 수 있었으며, 기술의 혁신이 미학의 다양성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비판적 인식을 포함하여, 12음기법을 역사적 산물로만이 아닌 살아 있는 질문의 장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은 음악을 논리적 구조 속에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질서 속에서 새로운 감각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정신적 도구이다. 동시에, 그 체계에 대한 질문과 균열, 변형 역시 음악적 사유의 일부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12개의 음을 마주하며 여전히 질문한다. 어떤 순서로,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관계를 부여할 것인가. 그 질문은 단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음악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사유하고 감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12음기법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며, 동시에 수많은 새로운 질문을 가능케 하는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