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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전환점

구체 음악(musique concrete)과 테이프 음악

by Komponist
pierre-schaeffer-1.jpeg Pierre Schaeffer Photograph: Serge Lido © INA


20세기 음악은 과거의 어떤 시대보다도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인류의 음악적 사고는 수천 년 동안 악기와 인간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전자음악의 출현은 그러한 전통적인 틀을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음악적 패러다임을 정립했다. 전자음악은 단순히 기존 악기의 확장이나 편리한 기술적 도구로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소리의 존재론적 개념 자체를 변혁하는 혁신적인 예술적 사건이었다.


기존의 서양 음악 전통에서 음악은 주로 기보법을 통해 표현되었으며, 음계와 화성, 리듬과 같은 규칙적 요소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전자음악의 등장은 기존의 기보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새로운 소리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발전이 아니라,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자음악은 소리 자체를 음악의 중심 요소로 삼는 철학적 전환을 이루어냈으며, 이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Readymade)가 미술에서 수행한 개념적 혁명과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했다.


전자음악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음악은 근본적으로 연주자와 청중이 공유하는 "물리적 연주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소리는 악기를 통해 물리적으로 생성되었고, 그 사운드의 특성은 악기의 재질, 연주자의 기량, 그리고 연주 환경과 같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었다. 따라서 음악은 기본적으로 연주의 순간성과 공간성에 의존하는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전자음악은 이러한 개념을 전복했다.


전자음악은 단순히 새로운 악기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 존재론의 변화, 즉 소리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기존의 음악은 연주자와 작곡가, 기보법과 해석이라는 전통적 관계 속에서 존재했지만, 전자음악은 이 관계를 해체하고 녹음 매체를 통한 소리의 고정성과 재현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는 플라톤이 주장했던 "예술은 본질적인 형상의 모방이다"라는 개념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소리를 그 자체로 창조할 수 있는 독립적 실체로서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음악의 역사는 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전자음악의 탄생과 발전은 20세기 음악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자음악, 라이브 일렉트로닉, 컴퓨터 음악, 알고리즘 작곡 등의 용어는 처음 등장했을 때 특정한 의미를 가졌으며, 그에 따른 독자적인 역사를 형성했다. 이와 별개로 음악학에서는 이러한 개념들을 정의하고 역사적으로 분류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전자적 매체를 활용한 음악에 대한 합의된 역사적 서술로 정립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권에서는 일반적으로 musique electroacoustique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영어권 및 독일어권에서는 electronic music 또는 elektronische Musik가 주로 사용된다. 이 용어들은 역사적, 현대적 장르와 형식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되며, 심지어 대중음악 장르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전자음악이라는 개념은 1950년대 프랑스에서 등장했다. 이는 전통적인 기악 및 성악 음악과 달리, 스피커 재생이 필수적인 음악을 의미하며, 특히 프랑스어권에서는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의 전통을 따라 아쿠스마틱 음악(musique acousmatique)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전자음악에서 새롭게 등장한 요소 중 하나는 라이브 일렉트로닉을 제외하고연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전통적인 의미의 악보가 존재하지 않으며, 음악은 곧바로 녹음 매체에 고정된다.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과거에는 이를 테이프 음악이라 불렀으나, 오늘날에는 고정 미디어 음악(fixed media music)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1940년대 말, 셰페르는 파리에서 구체음악(musique concrete)를 창시했다. 셰페르에게 "콘크리트(concret)"하다는 것은 음향적 현실에서 가져온 소리, 즉 마이크를 이용한 녹음을 통해 획득한 소리 재료를 의미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작곡이 이루어졌다. 콘크리트라는 개념은 또한 녹음된 소리들이 문자로 기보될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즉, 기존의 악보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이며, 오직 녹음 매체에만 존재하는 소리라는 뜻이었다. 셰퍼는 전자음향적으로 녹음된 소리와 잡음이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날 때, 그것이 새로운 언어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그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소리체(corps sonore)와, 그 결과로 생성된 소리 객체(objet sonore)를 구분했다.

이 시기 구체음악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주로 반복적인 구조를 가졌다. 당시 테이프 녹음 기술은 아직 발전되지 않았고, 셰페르는 직접 끝없는 홈이 새겨진 레코드판을 이용해 녹음된 소리를 편집했다. 그는 특수한 키보드를 활용하여 여러 개의 레코드판을 동시에 연주할 수도 있었다.

셰페르의 뮤직 콘크리트는 소리 객체라는 개념을 통해 소리가 원천에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기차의 소리가 단순한 "기차"라는 대상의 모방이 아니라, 음악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독립적인 소리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소리의 의미를 그것이 생성된 물리적 원천과 분리하는 획기적인 사고 방식이었다. 이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도구적 존재" 개념과도 연결되며, 인간이 기존의 기능적 사고에서 벗어나 대상을 그 자체로 경험하려는 현상학적 접근과도 맞닿아 있다.

1951년, 셰페르는 뮤직 콘크리트 연구 그룹(Groupe de Recherche de Musique Concrete, GMRC)을 설립했다. 이 그룹에는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장 바라케(Jean Barraque), 이베트 그리모(Yvette Grimaut)같은 작곡가들이 참여했으며,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은 1952년 셰페르의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첫 전자음향 작품 Etude를 제작했다. 또한, 에드가 바레즈(Edgard Varese)는 자신의 대표작 Deserts(1949–54)의 Interpolationen(1953)을 여기서 처음 작업했으며,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 또한 1957년 Diamorphoses를 같은 스튜디오에서 완성했다.

그러나 1953년 불레즈는 뮤직 콘크리트에 강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그는 작곡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소리 재료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뮤직 콘크리트는 "소리 재료를 미리 결정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전자음악의 또 다른 중요한 개념적 전환은 우연성과 결정성(determinacy and indeterminacy) 사이의 긴장 관계였다. 전통적인 음악 작곡 방식에서는 작곡가가 모든 요소를 통제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존 케이지(John Cage)의 테이프 음악(Tape Music)은 작곡가의 통제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의 주역을 기반으로 한 우연성 기법을 도입하여, 음악이 완전히 계획될 수 없으며, 테이프 조작과 변형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로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테이프 음악이라는 용어는 초기 미국의 전자음향 음악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특히 컬럼비아 대학교를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음악은 프랑스의 뮤직 콘크리트와 독일 쾰른의 전자음악과는 유사한 기법을 공유했지만, 개념적 배경에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뮤직 콘크리트는 실세계의 소리를 변형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으며, 독일의 전자음악은 순수한 전자적 음향을 강조했다. 반면, 미국의 테이프 음악은 실험적인 요소와 우연성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더욱 개방적인 작곡 방식을 추구했다. 이는 작곡가가 사운드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테이프 조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를 음악적 창작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1948년, 루이스 배런(Louis Barron)과 비비 배런(Bebe Barron)은 뉴욕에서 마그네틱 테이프 레코더를 활용한 실험을 시작했다. 이들의 작업은 녹음된 악기 소리를 전후방향으로 재생하거나, 테이프를 절단하여 다른 순서로 배치한 후 다시 붙이는 등의 기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51년, 존 케이지는 배런 부부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마그네틱 테이프를 위한 음악 그룹(Music for Magnetic Tape)"을 결성했다. 이 그룹에는 배런 부부 외에도 얼 브라운(Earle Brown), 모튼 펠드만(Morton Feldman),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가 참여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배런 부부의 Heavenly Menagerie(1951), 존 케이지의 Imaginary Landscape No. 5, 크리스티안 볼프의 For Magnetic Tape(1953)등이 있다.

케이지는 우연성과 결정성을 통해 "소리의 자연적 존재 상태"를 인정하는 철학적 태도를 제안했다. 그의 철학은 불교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음악이 반드시 인간의 의도에 의해 조작되지 않아도 된다는 개념을 전자음악에 적용한 것이다. 케이지의 테이프 음악과 우연성 기법은 전자음악이 완전히 인간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적 현상과 기술적 매체가 결합하여 새로운 소리의 질서를 형성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케이지의 그룹과 병행하여, 뉴욕에서는 블라디미르 우사체프스키(Vladimir Ussachevsky)가 마그네틱 테이프를 활용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1951년 컬럼비아 대학교 실험 음악 스튜디오에서 최초의 실험을 시작했다. 그의 초기 연구는 녹음된 소리의 전이(transposition)와 피드백(Feedback) 원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컬럼비아 대학교 실험 음악 스튜디오는 RCA 사운드 신디사이저를 도입하면서 변화했다. 이 장치는 펀치 테이프(punched tape)로 제어되는 초기 전자음악 시스템이었다.



뮤직 콘크리트와 테이프 음악은 단순한 실험적 음악 장르가 아니었다. 이 두 개념은 기존 음악이 갖고 있던 "연주자 중심의 음악적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소리 자체가 음악적 의미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셰페르의 소리 객체 개념은 이후 사운드 아트 및 현대 전자음악에서 중요한 개념적 기반이 되었으며, 존 케이지의 우연성 기법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한 현대 음악 창작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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