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이 벗겨지면 새로운 정갈함이 찾아올까
우리는 얼마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가. 정확히는 얼마나 볼 수 있는 것만 볼까. 내가 알기로 심리학에선 이를 '프레임'이라 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뼈대' 정도가 된다. 저마다 자신의 뼈대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안경으로 설명하면 쉬울 것 같다. 안경 쓴 사람은 안경 테두리가 만든 프레임 안에서 안경 렌즈로 세상을 본다. 성능이 엄청난 안경 렌즈가 있더라도 결국은 안경 테두리 안에 넣을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안경 렌즈도 프레임 안에 들어가야 한다. 안경 테두리 밖 시야는 안경 쓴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안경을 쓰지 않은 맨눈이라고 다를까. 이 역시 마찬가지다. 눈을 멀쩡하게 떴을 때 잡히는 시각과 이를 제어하는 뇌 속 사고로 사람은 인지한다. 이 때문에 같은 것을 본 사람 사이에서도 다른 느낌이 샘솟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프레임은 이렇듯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지배한다. 크게는 나라의 거대한 선거 운동부터 개개인의 일상 속 중요한 일까지 프레임은 알게 모르게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프레임 얘기를 꺼낸 것은 도시의 옷차림이 반갑기 때문이다. 며칠 전 도시가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시차를 두고 내린 폭설로 제설차의 발길마저 묶어버린 흰 눈이다. 엄혹한 한파를 동반한 눈 내림이다. 흰 눈은 그렇게 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뒤덮었다. 그러자 프레임 속 시각이 낯설다. 새로운 무언가가 열릴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도시가 잠깐 입은 이 흰옷이 벗겨지면 새로운 정갈함이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해본다. 아마 나도 모르게 벌써 봄을 기대하나 보다.
사실 완전히 모든 게 바뀌고 그런 건 없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월 안에서 도시든 세상이든 그런 천지개벽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대감 또한 소소하다. 그저 컴퓨터 재부팅 하듯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시스템이란 프레임 안에서 정상적으로 시작되는 걸 기대한다. 세상이란 거대한 프레임 안에서 다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합리적인 시스템이 돌아가는 그런 것 말이다. 자칫 망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미디어가 전하는 시끄럽고 지저분한 오염에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정화되길 바라는 심정이다.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 역시 흰 눈이다. 열차가 폭파되고 두 명의 인물이 그 밖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세상은 온통 흰 눈이었다. 모처럼 도시의 흰옷을 보며 자꾸만 그 장면과 컴퓨터 재부팅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