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말이 있다. 몇 가지의 체험 이후 내가 신봉하는 말이다. 영원할 것 같은 기쁨의 폭죽이 터졌을 때 그 즐거움의 끝을 미리 생각해보는 버릇이 내게 있다. 반대로 지독스러운 절망이 엎치고 덮쳐 올 때 나는 그 끝에 있을 반전을 그려보기도 한다. 어떤 면에선 냉정하고 볼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복잡다단한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나이테처럼 얻은 부산물이다. 30대를 돌파하면서 앞으로도 이 지겨운 오름세와 내림세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하는 개똥철학이 생겼다.
처음엔 지독한 가난이었다. IMF가 초등학교 졸업 시기를 관통하며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빚 고통이 내게도 왔는데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번은 중학교 친구 생일 파티에 가려고 옷장을 열었는데 입을 사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매일 교복 입고 놀다가 목 늘어난 티셔츠나 팬티 차림으로 자는 게 일상이었다. 그 흔한 청바지도 없었다.
생일파티는 일요일이었다. 학교도 안 가는 날 교복 차림으로 파티에 갈 수는 없었다. 가난이란 단순히 내가 참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하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깨알 진술을 하나 하자면 그 교복도 모두 물려 입은 것이라 색이 무척 바랜 상태였다.
또 한 번은 이스트팩 가방이 너무 사고 싶었는데 도무지 그 가격을 입에 올릴 수 없을 때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집 근처 문구점에서 검은색 이스트팩을 만원에 파는 거 아닌가. 옳거니 하며 샀는데 친구들이 "그거 짝퉁이야"라고 융단 폭격을 가해 어지간히 창피했던 기억도 있다. 가난이란 어설프게 감추려 할수록 티가 날 수밖에 없으니 구태여 감추지 말자고 그날 다짐했다.
끝없는 가난의 추억을 얘기하자면 A4 용지 10페이지는 채울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은 개인의 삶에 그토록 지대한 관심이 없다는 걸 알기에 이쯤 쓴다.
핵심은 그런 가난도 대충은 끝이 났다는 점이다. 중학교 입학할 때는 "졸업할 때쯤 풀린다"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쯤은 또다시 "졸업할 때쯤 풀린다"였다. 당연히 나는 그 어떤 말도 믿지 않았다. 체념한 채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교복과 사복 두어 벌로 버티다 보니 진짜로 어느 순간 가난의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졸업 후에도 곧장 취업할 수 있는 언론사라도 들어가야 했다.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 준비생'은 내게 사치였다. 월세부터 시작해 완벽한 자급자족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머리가 조금 돌아갔는지 가장 입사가 빠르면서도 괜찮은 언론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렇게 이룬 취업이 곧 가난의 끝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사회인으로서의 시작이었다. '적당한 삶'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첫 월급 타고 알았다. 끝이란 뭔지 그리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게 뭔지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삶에서 어떠한 끝점은 곧 시작점이라는 의식을 머리에 넣는 시기였다.
매일 조간신문을 보면 여러 시작과 끝이 겹쳐 보인다. 누군가의 행복 끝은 누군가의 행복 시작일 때도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이슈일 때 그렇다. 어떠한 사안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더 행복해질 것이란 희망을 품게 하는 소식이 될 때도 있다. 물론 그 반대로 지난한 어둠을 몰고 올 것 같은 일들도 담겨 있다. 그 거대한 희비 교차를 접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품은 채 신문을 넘긴다.
그저께는 한 20대 청년이 슈퍼에서 막걸리를 훔쳐 먹다가 경찰에 붙잡힌 얘기가 비중 있게 전달됐다. 단순 사회 소식이 지면에 꽤 크게 배치됐다. 알고 보니 스토리가 있었다.
이 청년은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며 실업자 신세로 친구네 집을 전전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배고프고 가난한 청년이 주린 배를 채워보겠다고 1100원짜리 막걸리를 '쓱' 한 것이다. 경찰한테 사연을 전해 들은 슈퍼 주인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청년의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의 몇몇 기업체에서 일자리와 숙식 제공까지 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이 청년 역시 끝점에서 시작점을 만난 셈이다. 희비가 교차하며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가 켜지는 성냥 긁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끝과 시작을 안다고 자신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반가웠다. 이제 이 청년은 취업 후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겪어가면서 또 다른 끝과 시작을 통과할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여기저기 교훈적인 말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아무리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누군가 보는 이런 곳에 이런 훈계조의 글을 쓰는 것도 사실 겸연쩍다. '내가 이러저러한 과정을 밟아봐서 아는데'하는 식의 논리를 예전 모 대통령처럼 푼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했다면 독자가 여기까지 읽지 않고 다른 페이지로 넘어갔을 것이라 믿는다.
끝은 분명히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시작이 온다. 그리고 또 그 일 역시 끝난다. 한파를 뚫고 내일도 모레도 출근하는 사람들한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일희일비를 경계하자. 순간을 즐기자. 저기 멀리 내다보면서 시작과 끝을 음미하자. 그렇게 하루를 버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