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동물들의 명절

내재된 균형 감각과 개인주의

by 반동희

요즘 도심 저녁에는 승합차가 자주 보인다. 손님을 목적지에 내려준 대리기사들은 이 승합차를 탄다. 대리기사의 시간과 비용을 승합차가 절약해 주는 것이다. 승합차가 대리기사를 태우면 그 대리기사가 나중에 취한 손님을 태운다.


지켜보면서 ‘준비를 위한 준비’라는 말이 떠올랐다. 손님을 태우는 대리기사의 준비를 위해 승합차가 이를 도와주는 셈이다. 어떤 대리기사가 하나의 일을 마친 뒤 다음 손님의 호출을 기다릴 때 특히 그렇다. 다단계로 엮인 사회의 구조란 이토록 구석까지 정밀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있다. 돌아보면 예전보다 지금 더 꼭 맞는 말이다. 저 말이 나왔을 때의 사회는 최소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그때의 사회적 욕구는 분명 생존과 직결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라는 물질시대 이후 인간은 급진 사회화 됐다. 생존을 위해 사회 어떠한 것과도 연결되지 않으면 완벽히 고립돼 먹고 살기 힘든 진짜 사회적 동물이 된 셈이다.


그러다 이제는 피로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회적 동물들이 과도한 연결과 사회적 부품화의 고통을 호소할 정도까지 됐다. 평범한 인간이 이토록 고립을 갈망하던 시기가 인류 역사상 있었던가.


‘힐링’이라는 음운조차 청아한 단어가 대유행이다. 그 아래서 대다수가 개인의 영역을 갈망하는 아이러니가 자주 회자된다. 어쩌면 혼술과 혼밥 같은 단어는 피로사회가 낳은 당연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과도한 사회적 동물이 된 인간이 스스로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자정작용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명절이 부르는 갈등들도 필연적으로 보인다. 피로사회에서 어쩌다 찾아온 긴 연휴에 대한 욕구가 민족 대이동으로 귀결되는 전통적 가치와 충돌한다. 그런 명절 속에서 친척이란 집단으로 어정쩡하게 뭉친 구성원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균형 능력을 믿는 입장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하나의 덩어리로 묶여가는 사회 흐름에 저항하는 파편화 도구라고 본다. 앞으로 주변의 어쩔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것이다. 내면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며 집중하라는 교훈도 넘쳐날 것이다. ‘준비를 위한 준비’는 그런 것에 천착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행동파들의 생활양식이 유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핵가족조차 핵처럼 분열된 시대다. 질문 또한 계속 핵분열하며 피로사회를 견디는 방법을 세세히 캐묻진 않을까. 저마다의 방법으로 계속 균형을 잡아나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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