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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Feb 07. 2017

국정농단 사태와 체육계 예산 문제

임의적 체육계 기금 운영 20%…씀씀이 문제 없나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충분히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던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죠?"


스포츠문화연구소 한 관계자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최근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취지로 떠도는 말을 몇 차례 들었다고 했다. 이날도 그는 끄트머리가 다 헤진 수첩을 들고 카페에 나타나 끝내 이 얘기를 하고 말았다. 오늘만큼은 재밌는 얘기만 하자고 했던 계획이 이 말을 시작으로 틀어졌다.


이 말은 비선들의 국정농단 사태 한복판에 있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두고 나온 얘기다. 자칫 개인의 그릇된 욕심을 지운 채 구조적인 문제로 몰고 간다고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평가다. 그러나 김종 전 차관을 비롯한 체육계 농단에 구조적 문제가 단 1%도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애초 그러한 허술함이 없었다면 비선들이 대통령 뒤에서 먹잇감으로 체육계를 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구조적 문제점을 밝히기 위한 근거 제시엔 여러 갈래가 있다. 그중 가장 빠른 점검은 관련 통계를 비롯한 숫자나 수치를 찾는 게 아닐까. 결국 체육계 예산 문제를 1순위로 짚었다. 전문가가 바라본 체육계 예산은 어떨까 하는 의문점이 싹텄다. 각종 예산만 20년 넘게 들여다본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고위 관료가 20%를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라고 체육계 예산 구조를 정의했다.



"매우 교묘했다고 하더라고요. 전문가가 보기에도 딱 꼬집어 이게 완벽한 문제라고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집행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정황은 있는데 그게 구조 자체에 녹아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거죠."


정창수 소장의 예산 수업을 들은 스포츠문화연구소 관계자는 이날 이렇게 전했다. 김종 전 차관이 국정농단 사태에 개입됐다고 알려진 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이 한 말이라고 했다. 체육계 예산이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 성격의 유형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정 소장이 지난달 작성한 '체육예산의 이해' 교육 자료를 보면 밑그림이 그려진다. 첫째, 최순실과 상의한 박근혜 대통령이 관련 예산을 확대한다. 둘째, 체육계를 옥죄고 접수한 김종 전 차관이 문체부 예산 집행에 드라이브를 건다. 셋째, 정권 막판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비선 소유의 회사로 사업 수주 싹쓸이를 도모한다. 넷째, 이러한 이권은 다시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으로 되돌아간다.


정황을 짚어보면 이렇다. 대한민국 전체 살림살이에서 문화체육예산은 대통령의 문화예산 2% 확보 공약에 탄력받아 최근 급속히 증가했다. 2011년 4조2000억원의 예산이 2016년에는 6조6000억원까지 치솟았다. 보건·복지·고용, 환경, R&D 등 충분히 미래 가치 지향적인 예산 투입처가 많은데도 문화체육예산은 눈에 띄게 상승 곡선을 그렸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이 쓴 체육예산의 이해

여기서 맹점은 문화체육부가 관리하는 체육예산이 정부관리 기금이 아닌 공공기관 관리기금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국민체육진흥기금의 예산 증가폭이 가팔랐다. 이 기금은 2015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김종 전 차관이 최순실 예산을 본격적으로 세팅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이에 정창수 소장은 "정부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는 조세 외의 재정수입 구조와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하면 장관이나 차관 등 고위 관료가 기금을 임의로 쓸 수 있는 형태가 짙다는 거다.


최근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시인했다. 이게 위증이 아니라면 김종 전 차관이 체육계를 좌지우지한 힘에 예산 집행을 넣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체육계 안팎에선 김종 전 차관이 예산을 무기로 대한체육회 산하 작은 협회들까지 주물렀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이 쓴 체육예산의 이해


우리가 흔히 '스포츠토토'로 부르는 체육복권 사업의 문제점도 이 사태와 연관된다. 체육예산의 수입구조는 체육복권이 주를 이루는데 실질적으로 국가재정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채 세입세출 예산 외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풀어보자면 '토토 예산이 국가 기금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기에 고위 관료가 막 쓸 수 있는 자금'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정창수 소장은 "기금 운영의 20%를 고위 관료가 사용할 수 있는 구조다. 체육예산의 97%가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사용되기에 20%를 사용한다는 건 엄청난 권한을 가진 것"이라고 이 부분을 지적했다. 특히 2003년에는 조세로 가는 체육예산이 80%였는데 '토토 복권'이라는 인식이 강해 정치인들이 이 기금운영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사회 전체의 관리 감시 소홀도 이러한 체육 농단 사태의 첫째 단추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예산이라는 틀 안에서 획기적인 대안은 있을까. 정창수 소장에 따르면 조세 중심의 체육을 확립하는 게 첫째다. 이는 투명한 예산 운영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는 체육사업을 지자체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안에는 지자체가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구체적인 안도 있다.


정창수 소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국내 환경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남겼다. 최근 대한민국은 2011년 대구육상세계선수권대회, 2013 충주조정세계선수권대회, 2014년 인천아시아선수권대회,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등 굵직한 대규모 스포츠행사를 연례행사처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각종 사업의 불합리성과 재정 낭비가 매번 거론됐다. 그런데도 2028년 부산하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하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흔히 메가 스포츠이벤트로 불리는 국제 스포츠 행사는 '돈 빼먹기 좋은 사업' '숨은 곳간' '숨기 좋은 방' 등으로 불린지 오래다. 이 모두 투명한 예산 편성과 체계를 갖추지 못한 국내 체육계 시스템 안에서 더욱 위태롭다. 타당성 검토가 여기서부터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창수 소장은 "해당 영역이 전반적으로 사업의 정당성을 묻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정치적 문제와는 별개로 예산 낭비적 구조를 보인다"면서 "체육계 예산이 객관적인 타당성의 검증이라는 맥락에서 다른 영역보다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체육 예산을 두고 왜 그 돈이 꼭 거기에 쓰여야 하는지 체육계 안팎을 비롯해 국회에서의 더욱 강한 감시 체제가 작동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체부는 지난해 말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의혹을 규명하고자 문제사업 특별감사팀을 출범했다. 체육 분야는 이 안에서 늘품체조, GKL 장애인 스포츠단 창단, 승마포럼, K-스포츠클럽 육성 등이 포함됐다. 이미 문체부 내부에선 향후 예산 삭감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서 현재의 삭감만이 아닌 예산 전체 집행 과정까지 뜯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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