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자살은 세상이 만든 조작과 거짓"
"사망 신고 하면 자살 인정돼 여전히 하지 않았다"
-자살로 단정 짓고 급히 수사를 마치려고 했다.(저서 p.21)
-유가족이 올 때까지 사고 현장이 보존 되지 않았다. 차량은 내곡 파출소에 방치된 상태였다. (저서 p.23-26)
-사망 시간 측정을 위한 체온 측정을 하지 않았다.(저서 p.43)
-CCTV자료를 요청했지만 '없다'라는 답변만 들었다.(저서 p.130)
-경찰에게 맡겼던 기원이의 휴대전화 문자 기록과 통화 내용이 전문가에 의해 삭제 됐다.(저서 p.132)
'아들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내게 주어진 숙명이다. 내 생의 마지막 숙제이기에 나는 기꺼이 이 하얀 백지를 메웠다.'
2014년 12월11일 <모두의 가슴에 별이 된 골키퍼>란 책이 세상에 나왔다. 주인공인 故 윤기원(당시 24세) 골키퍼가 세상을 떠난 2011년 5월6일 이후 3년7개월 만이다. 윤 선수의 어머니 옥정화씨가 쓴 이 책은 멈춰버린 그 시간에 대한 토로다. 언론을 포함한 소통 창구가 막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옥정화씨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직접 펜을 들었다.
책과 옥정화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세상은 윤기원 골키퍼의 죽음을 자살로 정리했다. 경찰은 '개인적인 이성 문제와 주전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옥정화씨를 비롯한 유가족은 이 말을 믿지 않고 있다. "아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라는 옥정화씨의 외침은 그날 이후 하늘에 부치지 못한 편지가 돼 세상을 떠돌고 있다.
옥정화씨는 여전히 아들의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았다. '떠나보내지 못해서'라거나 '가슴에 살아 있어서'와 같은 일차원적인 감성은 차라리 덜 아프다. "사망 신고를 할 경우 아들의 죽음이 자살로 인정되기 때문"이라는 명확한 논리 앞에선 슬픔이 울분으로 승화한다.
윤기원 골키퍼가 세상을 떠날 당시 축구계는 한창 승부조작 때문에 시끄러웠다. 윤 선수의 죽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옥정화씨의 주장이다. 사건 당시 윤 선수는 휴게소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 안에서 타다 남은 번개탄과 현금 100만원과 함께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러나 옥정화씨는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수사 방식과 대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이 자살로 단정 짓고 수사를 급히 마쳤다는 게 큰 틀에서의 분노다. 사건 당일 윤 선수가 맥주와 안주는 샀으나 번개탄을 구매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심지어 불을 붙였다고 하는 라이터에서도 아들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옥정화씨의 반론이다. 사건 전후의 CCTV 공개를 경찰이 거부한 점, 윤 선수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문자기록이 전문가에 의해 삭제된 점, 윤 선수의 상을 치르던 날 동료 선수들이 A 선수를 통한 승부조작 외압이 있었다고 한 점 등을 조목조목 내세우고 있다.
옥정화씨가 보기에 하늘로 떠난 아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흔적과 파편을 엮어 아들을 대변하고 있다. 밝혀주느냐, 감추느냐 아니면 최소한의 듣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이 우리 몫으로 남았다.
*故 윤기원 선수는...
o 1987년 5월 20일(부산출생) ~ 2011년 5월 6일(사망 당시 만24세)
o 청소년클럽
-2000-2002 연초중학교 (경남 거제시 소재)
-2003-2005 거제고등학교 (경남 거제시 소재)
-2006-2010 아주대학교 (경기 수원시 소재)
o 성인 클럽
-2010-2011 인천유나이티드 6경기 출전 (0골)
-201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
-2010년 11월 7일 K리그 제주유나이티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군 무대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