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정혁 Feb 07. 2017

'스포츠 인기' 프레임, 수용자가  깬다

태릉선수촌에서 스포츠신문을 볼까? 듣기론 "아니오"다. 구독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접하곤 있으나 열독 지수가 떨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안에 선수촌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 스포츠를 전문으로 다루는 신문인데 선수촌 주인공들이 스포츠신문엔 없다. 어쩌다 올림픽이나 국제대회가 가까워져야 이들이 지면에 배치된다. 미국발 트럼프 시대를 1면으로 띄운 종합지와 비시즌 프로야구 소식을 길어 올린 스포츠신문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선수촌에서 체감하기엔 그렇다.


누가 비인기 종목을 정의하나


비인기 종목이란 말은 때에 따라 폭력적인 단어가 될 수 있다. 해당 종목 종사자와 관계자들에겐 썩 달가운 표현이 아니다. 스포츠 종목은 애초 규칙과 경기 구성 등으로 나뉘는 세계다. 외부 시선으로 측정해 "이 종목의 성격은 이렇고 저 종목의 성격은 저렇다. 그러니 이건 A종목이고 저건 B종목"이라고 정의하는 집합체가 아니다. 각 종목만의 고유한 특색으로 나뉘는 판이 스포츠다. 그런데 여기에 '인기'와 '비인기'라는 접두사가 붙으며 종목 만남에 앞서 선입견이 생산되고 있다. 발신자와 수신자라는 메시지 전달 체계로 나눠본다면 언론의 역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인터넷 포털 사이트 뉴스 페이지를 띄워보자. 국내 2대 포털이라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모두 뉴스와 스포츠 뉴스를 따로 구분해 놓고 있다. 그만큼 스포츠 뉴스가 돈이 되는 영역이라고 추론 가능하다. 최소한 클릭 수가 많은 분야인 건 확실하다. 그래서일까. 스포츠 뉴스란 편집을 보면 온통 축구와 야구를 비롯한 인기 종목과 구기 종목의 향연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다룬 비평과 종목 협회를 포함한 행정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기사는 묻힌다.


스포츠와 팬들을 하나로 묶는 방송 중계도 마찬가지다. 방송사들의 쏠림이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격차를 더욱 벌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지난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은 우슈의 이하성이 따냈다. 하지만 애초 생중계까지 예정됐던 이 경기는 금메달 기대 종목으로 불린 사격과 동시간대라는 이유로 전파를 타지 못했다. 녹화 중계마저 되지 않아 결국 하이라이트만 전달됐다.


지난해 열린 리우올림픽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역도 53kg급에서 윤진희가 인상과 용상 합계 199kg을 들어 동메달을 땄으나 이 장면은 중계되지 않았다. 특히 윤진희가 두 아이를 낳고 4년 만에 따낸 메달이라는 인생 스토리도 녹아있었으나 방송사의 시청률 계산 앞에 묻혀버렸다. 이밖에도 한국 올림픽 사상 첫 결선에 진출한 남자 수영 다이빙의 우하람(최종 11위)과 여자 사이클 경륜에서 사상 첫 2라운드에 출전한 이혜진(최종 8위) 등 결과 못지않게 값진 과정을 보여준 종목 역시 외면됐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모든 방송사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목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리우올림픽 축구 경기가 열렸을 때 공중파 채널이 너도 나도 동시에 중계를 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결국 신문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언론의 편중된 '확대 재생산'이 증폭할수록 소외된 종목들은 점점 더 비인기 종목이란 늪에 빠지는 구조다.


기업논리가 철저히 먹혀드는 곳


사실 하나 더 곱씹어보면 언론만 탓할 수도 없다. 오히려 언론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 기저엔 언론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가 있어서다. 기업에서 나오는 광고 수입이 여기에 끼어 있다. 그나마 언론은 공적인 기능에 대한 눈치 보기라도 있다. 광고 수익이라는 궁극적 목표가 있지만 기업만큼 노골적으로 특정 종목만 대놓고 편애할 수 없다. 어젠다 세팅과 편집이라는 툴 안에서 객관적인 척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게 전부다. 하지만 기업은 이익추구라는 확고부동한 슬로건 아래서 활동한다. 기업은 스포츠 역시 자본의 피뢰침으로 대한다. 자신들한테 어떤 것이 돌아오는가 하는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일부에서 이를 두고 사회공헌 활동의 일부라고 반박할 수 있다. 프로 스포츠단을 포함한 기업들의 구단 운영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데도 그들이 자금을 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본다면 일차원적 해석이란 평가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공헌이라는 논박을 인정하더라도 그 또한 기업의 산출하기 힘든 브랜드 가치나 이미지를 위한 것이라는 걸 덧붙일 수 있다. 당장 기업의 홍보 효과 측정에서 언론 보도 수를 집어넣는 걸 생각해보자. 이 또한 기업이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을 나누고 어떠한 특장점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반증한다.


리우올림픽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졌다. 축구는 대표적인 인기 종목답게 KT, 금호아시아나, 네이버, 교보생명, 하나은행, 코카콜라 등이 먼저 후원을 자처했다. 그나마 '메달권'으로 분류돼 올림픽 때만이라도 인기를 얻는 양궁(현대·코오롱), 사격(한화그룹), 펜싱(SK텔레콤·아디다스), 핸드볼(SK그룹·필라), 태권도(삼성에스원) 등이 비교적 안정적인 후원을 받았다. 하지만 요트, 하키, 카누 등은 넉넉지 않은 후원 속에서 경기에 나섰다. 특히 조정은 아예 후원사를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재벌 기업 고위층이 협회장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해당 종목에서 나온다. 기업이 스포츠를 대하는 것 역시 이윤추구라는 사실을 전제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종목 쏠림 현상은 비인기 종목 종사자와 관계자들의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수용자에게 그대로 둬 보자


그럼 비인기 종목의 인기 종목 전환은 방법이 없나? 당장은 급진적인 해답이 없어 보인다. 스포츠가 사회 현상의 조각이라고 본다면 편중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모든 스포츠 종목이 인기 종목 테두리 안에 있는 곳은 드물다. 차라리 하지 않는 종목이 있는 가운데 하는 종목만 왕성하게 키우는 나라 정도가 있을 것이다. 흔히 동계 스포츠 왕국이라 불리는 몇몇 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구기 종목과 프로 스포츠의 총아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자본주의 성격이 옅은 러시아 정도가 모든 스포츠를 정치 경제적으로 접근해 '패권주의'를 운운했으나 망했다. 약물 사태가 끊임없이 고발되며 지금과 같은 '도핑 왕국'으로 전락했다.     

한국은 인구나 면적으로 봤을 때 비교적 다양한 종목이 공존한다. 열병처럼 앓고 있는 성적지상주의와 국가주의만 제쳐놓으면 '스포츠 강국'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이 때문에 인기와 비인기라는 스포츠 패러다임이 깨질 수 있다. 최근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통합에서 힌트를 찾는다. 이 통합은 문체부의 고압적인 태도부터 시작해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슈지만 방향만은 분명히 옳다.


통합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를 가정해보자. 앞서 서술한 기업과 언론이 지배하는 스포츠 어젠다 세팅이 일정 부분 깨질 수 있다. 당장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종목 자체가 해당자에게는 인기 종목으로 주목된다. 능동적인 스포츠 수용자가 늘어나는 셈이다. 이때의 인기와 비인기를 가르는 고유 판단만은 언론과 기업의 논리가 끼어들 수 없는 틈새다. 그때는 언론과 기업이 집중하는 스포츠 자체가 인기 종목이라는 고착화 역시 금이 갈 것으로 보인다. 수용자 중심의 구조가 조금은 더 싹트는 것이다.


지금의 배드민턴만 보더라도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생활 체육이 가장 잘 되어 있고 활성화된 종목이다. 이런 종목을 무턱대고 비인기 종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을 갖고 기다려준다면 생활 체육이 여기에 답할 것이다. 집중해야 할 곳이 명확해졌다. 생활 체육 제도 개선과 환경 향상이다.


*이 글은 스포츠1에도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故 윤기원 사건 의혹..'모두의 가슴에 별이 된 골키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