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사회가치는 주목도에서 나온다. 높은 사회적 관심 속에서 스포츠는 기능한다. '인기'라는 수식어를 붙여 인기 스포츠와 비인기 스포츠를 나누는 것도 이런 무의식 때문이다. 올바른 표현이 아니지만 일반적인 현상이 그렇다.
당장 대한민국 2대 포털사이트라는 곳에 접속해서 뉴스 섹션을 눌러보자. 공통으로 '뉴스' '연예' '스포츠'가 독립적으로 나타난다. 과거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가 아니라 그들을 한데 묶은 뉴스들 한편에 스포츠가 독립적인 카테고리로 있다. 클릭이 잘 나오기 때문에 포털이 그러한 정책을 펴는 것일까? 그러한 정책을 펴니까 따로 독립 카테고리가 된 것일까? 결론에 앞서 확실한 건 스포츠가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다는 거다.
이를 가장 잘 알았던 인물이 무하마드 알리다. 그는 복싱이라는 스포츠를 향한 주목도를 일찌감치 깨달았다. 알리는 링 위의 자신을 향한 주목도를 링 밖 세상을 향한 메시지로 되돌렸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던 그의 펀치는 링 밖으로 번져 나와 사회의 차별과 불합리함을 강하게 두들겼다.
그런데 스포츠의 사회적 힘이 국내에선 멀어 보인다. 국내 스포츠인들은 자신을 여전히 스포츠라는 한정된 영역에만 묶어두고 있다. 얼마 전 알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만 해도 그렇다. 과연 우리 스포츠에서 알리 같은 인물을 찾을 수 있었나?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최동원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더 김인식 야구대표팀 감독의 행보가 아쉽다. 김 감독이 누군가. '국민 감독'으로 불리며 각종 국제대회 때마다 짠하고 나타나 야구대표팀의 영광을 끌어다 준 인물이다. 70세의 고령이자 그 자체가 야구의 상징이다. 게다가 김인식 감독은 평소 학생 야구 선수들의 학습권과 운동장 밖 세상에 대해서도 강조해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김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오승환의 대표팀 선발을 두고 "국가를 위한 봉사"라고 정의했다. 절실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끝내 그를 선발했다.
벌써 잊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오승환은 해외원정 도박혐의로 2015년 12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 복귀할 경우 한 시즌의 50% 출장 정지 징계도 있다. 단지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으므로 그 징계가 발동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징계가 대표팀 합류까지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비난과 스포츠 스타가 가진 영향력이라는 것을 볼 때 이건 분명 무리수다. '1등 주의'부터 '성적지상주의'까지 온갖 비판적 수식어를 붙여 깎아버릴 수 있는 악수다. 당시 오승환과 같은 혐의를 받은 임창용은 이미 지난해 72경기에 못 나왔다. 차라리 김인식 감독이 오승환이 절실하지만 국민적 정서라는 것을 고려한다고 했으면 어떨까. 어쩌면 괜찮으니 뽑으라는 여론이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봉사라는 단어도 어색하다. 태극마크의 성적이 나라의 영광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건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서도 확인했다. 스포츠에 국가주의를 주입하는 건 스포츠가 가진 사회적 탄성을 갉아먹는 행위다. 오히려 스포츠 스타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은 그가 가진 주목도와 영향력을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에 쓰는 것이 아닐까. 사회의 흐름 안에서 스포츠를 대할 때 스포츠는 대중문화의 하위 영역이 아닌 수평적 영역으로 올라선다. 이따금 스포츠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스포츠 문화론'에 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최근엔 몇몇 연예인들도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활용해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낸다. 성향까지 어때야 한다는 건 아니다. 스포츠계만의 독특한 구조와 사회와 격리된 채 검투사처럼 길러진 그들의 교육 과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스포츠인들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지금처럼 딱딱한 국가관부터 깨야 한다. 1970년대부터 주입된 빗나간 스포츠 내셔널리즘을 타파할 때 스포츠 그 자체의 격이 올라간다. 국가를 위한 봉사라는 건 스포츠에 없다. 이젠 그 자승자박을 풀 때도 되지 않았나.
*이 글은 스포츠문화연구소 웹진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