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정혁 Feb 07. 2017

이동국에 대한 개인적인 잡담

'스포츠 키드'의 처음이자 마지막 팬심

이동국의 경기를 처음 봤을 때가 선명하다. 국내에서 열린 청소년 대표팀의 경기였다. 상대가 태국인지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다. 동남아 어느 국가와 경기를 했는데 이동국이 골을 넣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축구부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 초보의 눈에도 이동국은 달랐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꽤 관심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축구를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었다.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그 아이는 가수가 아닌 이동국을 좋아했다. 심지어 HOT와 신화도 이동국 다음이었다. 외모가 마음에 들고 골을 많이 넣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 아이가 독특한 게 아니었다. 이동국은 축구장을 넘어 하나의 시대적 '인기남'으로 자리 잡아갔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혼성그룹 '코요테'의 신지가 이동국을 자신의 이상형으로 꼽았다. 이동국은 축구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긴 선수였다.


이동국-안정환-고종수가 올스타전에 참석했을 때가 생생하다. 이벤트로 열린 이어달리기에서 이동국이 의외로 빨랐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동국이 축구를 시작한 계기가 '발이 빨라 육상부를 하다가'였다.


그렇게 이동국이란 축구선수를 지켜보며 나도 사춘기를 맞았다. 이동국이 사춘기 한 남자아이의 로망이 됐다. 그는 축구도 잘했고 얼굴도 잘생겼고 여자들의 인기도 한몸에 받았다. 그러다 생애 처음으로 이동국의 팬카페에 가입해 글을 훔쳐보기도 했다. 아직도 모든 스포츠스타나 연예인을 비롯해 한 개인의 팬카페에 가입한 것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동국이 독일과 잉글랜드를 거쳐 부진할 때에는 그의 팬이라는 사실을 감춰야 할 때도 있었다.


박지성-박주영 같은 스타가 나오고 조재진이 한동안 대표팀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면서 이동국은 찬밥신세가 됐다. 안정환이 판타지 스타로 등장해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개념을 통째로 바꾸자 이동국은 더욱 설 자리가 없었다.


"황선홍 감독이 그래도 이동국이 자기 뒤를 이을 스트라이커라고 말했는데?"라는 내 주장은 최후의 보루였다. 마지막 순간 내가 이동국의 팬임을 밝힐 때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느리다" "게으르다" "현대 축구와 맞지 않는 스트라이커다" 등의 모든 지적에 대꾸하기도 벅찼고 실제 그럴 이유도 딱히 없었다.


2002 월드컵 탈락은 이동국의 팬을 자처하는 내게도 큰 아픔이었다. 월드컵 직후 열린 K리그 경기에서 이동국이 골을 넣은 이후 코너킥 깃발을 차는 세리머니를 한 적이 있다. 노란빛으로 염색해 짧게 자른 머리로 그는 축구팬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도 통쾌했겠지만 나도 정말 시원했다. 물론 과한 세리머니였다며 심판은 경고 카드를 꺼내 올렸다.



이동국을 보며 가장 가슴 찡했던 때는 2014년 열린 K리그 올스타전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기자석 꼭대기에 앉아 멀리서 그를 바라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도 "지성이 보다 오래 선수생활을 할 줄은 몰랐다"고 인터뷰했는데 '인생사 참 알 수 없다'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당시 모든 초점이 박지성에 맞춰진 K리그 올스타전에 이동국이라는 스타가 조연으로 뛸 줄은 나도 몰랐고 그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동국은 끝까지 박지성을 칭찬하며 성숙한 자세를 보였다.


이동국은 K리그에서 신인왕(1998), 득점왕(2009), MVP(2009, 2011)를 모두 수상했다. 현재는 K리그 최다 골을 계속해서 늘려가고 있다. 움직이는 기록제조기이자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꼽힌다.


그럼에도 이동국을 보면 진한 아쉬움과 함께 뜨거운 무엇인가가 가슴에 생긴다. 그는 최고로 운이 좋은 선수일 수도 있고 최고로 운이 나쁜 선수일 수도 있다. 아직 이 부분을 놓고 어느 쪽인지 확신을 못 하겠다.


분명한 점은 그의 축구 인생이 막바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시점에서 이동국은 최고였으며 어떨 때는 최악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이동국이 최악으로 떨어졌던 시점과 반등한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더 극적이다.


이동국은 모진 풍파를 겪었다. 지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힘을 내 오래오래 그가 선수생활을 하길 바란다. 이동국의 축구 인생을 보며 나는 성장했고 또 그의 삶에서 비릿한 씁쓸함도 많이 느꼈다. 고통 뒤에 오는 환희를 봤고 영광의 순간 뒤에 올 아픔에 대처하는 법도 배웠다.


이동국이 매번 거친 숨을 그라운드에서 토해내며 더 많은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 흔히 하는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떠나겠다"는 말은 적어도 이동국 축구 인생에서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는 이미 많은 성공과 아픔을 모두 경험했다. 모든 것을 쏟아내 축구 선수로서 더는 골을 넣을 수 없을 때까지 이동국이 그라운드를 달렸으면 한다. 바닥과 하늘을 모두 맛본 이동국이기에 가능한 멋진 마무리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표팀 봉사'라는 자승자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