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의 '공장적' 해석

경제와 편의가 만날수록 누구가는 소외된다

by 반동희

경제나 마케팅을 모르지만 대형 마트가 그의 집약체인 건 안다. 대형 마트는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각종 마케팅 기법이 합쳐진 곳이다. 기본적으로 대형 마트엔 창문이 없다. 고객의 시간 감각을 없애기 위한 전략이다. 시선을 빼앗는 방법도 다양하다. 가끔 1층에서 2층으로 가려면 굳이 한 바퀴 구경하고 가야 한다. 꼭 필요한 생활용품은 정작 저 안쪽에 있어 그곳에 가다가 덜 필요한 것들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재래시장의 주도권은 마트로 넘어간 지 오래다. 동네마다 작은 가게도 대형 마트의 동생뻘인 '슈퍼마켓'으로 재탄생했다. 이따금 대형 마트와 동네 슈퍼마켓들을 보면 산업화 시대의 공장이 다시 태어난 것 다. '현대적 공장' 정도로 붙일 수 있을 텐데 이를테면 70~80년대를 그린 세태 소설 속 같은 거다. 그런 소설 속에는 도심에 공장이 생기면서 그곳에 형도 취직하고 누나도 취직하고 심지어 엄마와 아빠까지 온 가족이 매달려 밥벌이하는 모습이 나온다. 소비자가 되기에 앞서 노동부터 제공하는 셈이다.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에 있는 도시일수록 대형 마트의 과거적 해석이 더욱 짙어진다. 인근 사람들의 생활은 대형 마트에 맞춰져 있다. 어떤 포인트 카드를 만들까 하는 문제까지 그들이 정해준다. 이곳의 일자리는 대다수 근거리 거주자들로 채워진다. 말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대형 마트 이름을 외치며 그곳에 가자고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사회적 관점에서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곳에서 밥을 버는 이들의 생활이 얼마나 나아졌느냐 하는 점이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하던 공장 시절과 대형 마트의 과거적 해석이 얼마나 차이를 보일까 하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최저 시급을 포함해 일자리 환경 개선이라는 구호가 존재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그때나 지금이나 대형 마트는 별반 다를 것 없다. 특히 임금 대비 물가 지수가 높은 한국이다. 대형 마트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환경 역시 예측 가능하다. 대형 마트의 부당한 갑질 고용을 고발한 웹툰이나 영화성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여전히 사회의 감시가 필요한 곳이 아닐까 한다.


늘 가는 대형 마트에 주차할 때면 마스크조차 쓰지 않은 젊은 청년들의 안내가 거슬린다. 그들의 안내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다. 왜 공기도 좋지 않은 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손을 흔들고 있느냐 하는 거다. 법대로 하면 쓰든 안 쓰든 개인의 자유란다. '을'의 입장에선 쓰라는 말이 있기 전까진 안 쓰는 게 맞는 분위기다. '저 또한 마케팅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몇몇 대형 마트에서 미관상의 이유로 쓰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단다. 아주 틀린 추론은 아닌 셈이다.


경제와 마케팅과 편의성이 손을 맞잡을수록 어떠한 인간은 더욱 소외된다. 경제 효과 좋아하는 전문가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운운하면서 대형 마트의 이점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또 다른 누군가의 환경은 악화한다. 그 접점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숫자로 잡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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