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발언?…쉬운 것은 강하다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기가 막힌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스스로 무덤덤한 성격이라 자신하는데도 가끔 그런다.
몇 년 전 최인호 작가의 유작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고 그랬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은 순간 책을 소파에 툭 던졌다. 그리곤 얼굴을 감쌌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나 같은 건 엄두도 못 내' 등등 경외감과 동시에 자괴감에 빠졌다.
쓰고 보니 멋쩍은데 여전히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다. 그날 내내 놀랍도록 치밀한 구성과 흡입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 며칠 뒤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궁극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토록 복잡다단한 구성을 손쉬운 언어로 술술 풀어냈다는 점이 얼굴을 감싸 쥐게 한 비밀이었다.
마찬가지로 <총 균 쇠>가 있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불리는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써서 퓰리처상까지 받은 책이다. 서울대학교 대출 도서 1위로 불린 고전인데 이 역시 웅장함으로 마음을 때린다. 686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은 과장 조금 보태서 어지간한 책 3권을 묶은 부피감을 자랑한다. 하지만 탁탁 걸리는 것 없이 바닥에 떨어진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잘 풀린다. 의사소통 가능한 수준의 지식만 있어도 인류와 지구의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는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난해 한창 유행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도 일맥상통하다. 인류사를 훑어낸 책치고는 무척이나 손에 잘 잡히고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이것보다 훨씬 진도가 안 나가는 소설도 수두룩할 정도다.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나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같은 언뜻 보기에 딱딱할 것 같은 주제의 책들도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말할 것도 없다. 헤밍웨이, 까뮈, 피츠제럴드, 쿤데라, 체호프 같은 저 옛날 소설가들의 작품도 그러하다. 이들의 언어는 고풍스럽지만 비교적 쉽다.
유시민 작가는 현대 사회를 '필담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소셜미디어, 메신저, 이메일, 인터넷 뉴스 등 요즘은 문자로 소통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글이 의사소통의 중심이 됐는데 뛰어난 작품들의 사례에 비춰보면 쉬운 게 곧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핵심을 손쉽게 전달하는 것만큼 상대를 위한 효율적인 의사소통은 없다.
호평받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봐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경제학자 장하준의 책들은 이 정점에 있다. 언론이 자주 호출하는 다른 분야 전문가들 또한 쉬운 언어로 현상과 의미를 짚어낸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 체계를 과시하지 않는다. 질문을 받았을 때 최대한 쉬운 언어로 전문적 식견을 담아 답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복잡하다고 생각하면 꼭 맞는 비유로 이해를 돕는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쉬운 전달을 추구한다.
생각해보면 '사이다 발언' 같은 것도 그런 거다. 가려운 곳을 끄집어내 명확하게 언급하는 것인데 그러한 사이다 발언치고 쉽지 않은 메시지는 없다. 중심부를 찌른 해석과 지적이라도 언어 자체가 난해해 듣는 이가 단번에 잡지 못한다면 그건 사이다 발언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정치인이나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이들의 모호한 발언이 이따금 공분을 자아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메시지의 핵심을 찾아내려 하는데 이렇게 보면 이런 것 같다가도 저렇게 보면 저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게 짜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쉬운 언어의 힘을 알고 있는 고수들은 그래서 더 명확한 사고 체계를 갖고 있다. 어떤 것이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쉽게 묶어내는 게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쉬운 언어가 강력한 무기라는 걸 이들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