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또 다른 '그림자 노동'
읽은 것이 곧 내가 된다. 책장을 넘기는 행위는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때때로 책 한 권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사실 책 안에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터넷은 반대다. 온라인에선 내가 곧 읽을거리다. 나의 클릭은 누군가에게 읽혀 콘텐츠로 재가공된다. 다채로운 SNS와 빅데이터가 넘실대는 시대라 그렇다. 초기 인터넷 시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어느덧 개인이 파편적 정보 콘텐츠로 급부상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개인의 단순한 클릭을 그때만의 연결고리로 끝내지 않는다. 해당 클릭을 바탕으로 특정 개인이 좋아하는 것과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이후에도 그에게 노출한다. 요즘은 포털에서 뉴스를 봐도 내가 봤던 뉴스를 중심으로 편집 화면이 바뀌기도 한다.
자칫 잘못하면 '확증편향'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확증편향이 단단한 이는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를 접하면 추가 자료까지 찾아내 관점을 공고히 한다.
반대로 자신이 믿었던 것이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뒤집는 정보가 나오면 추가 자료까지 찾아내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무마하려 한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음모'라고 깎아내리든지 출처 불분명의 가짜라고 선을 긋는 이들도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 내적 콘크리트 벽을 치는 셈이다.
흔히 인터넷 논객들이라 하는 이들은 사실 이런 토대 위에 서 있기도 하다. 물론 엄격한 팩트 확인과 치밀한 해석으로 진실에 가까운 판단을 내리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잘 나가던 논객이 어느새 자신을 호응하는 이들의 환호에 취해 이러한 확증편향에 갇혀버리는 경우를 몇 차례 봐왔다.
그때 그들의 선택은 둘로 나뉜다. 자기가 내렸던 판단이 다른 면에선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정리해 정정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밀고 나가 지지하는 이들의 확증편향에 기대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논객으로서 생명은 다하는 대신 프로파간다로서 탈바꿈한다.
확증편향은 현대인들이 끊임없이 싸워야 할 대상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인간의 사회적 활동이 크게 변했다. 그러나 그 질적 수준 역시 동반 상승했느냐는 질문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요즘 판치는 가짜 뉴스라는 것도 결국은 확증편향을 이용한 장삿속이다. 어떤 개인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팩트가 있다고 확증편향으로 기우는 가운데 가짜 뉴스는 그 안에서 힘을 싣는다.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사용자 중심의 콘텐츠 제공은 이런 프레임을 단단하게 해주는 데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결과적으론 깊게 보기 위해 의심하고 물음표를 던지는 삶의 자세가 요구되는 셈이다. 이 또한 '그림자 노동'의 한 갈래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정보 취사선택에서도 무수히 많은 능동적 활동이 요구되는 현대인이다. 팩트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진실이 되는 건 아닌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