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나만의 매우 저렴한 '인풋 강조형' 답변

by 반동희

'어떠한 선택이 자발적이라 하더라도 그게 진정 자유로운 선택인가? 경제적 이익 등을 이유로 그런 선택에 유혹된 것은 아닌가?'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문장이다. 인상 깊다. 요즘 더 자주 떠올리고 있다. 어떠한 사안을 접했을 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자 타인을 이해하려 할 때 곱씹는 말이다.


2주가 조선왕조 500년이랑 맞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치는 중이다. 반나절만 뉴스를 멀리해도 새로운 소식이 쏟아져 대다수 정보가 과거로 쓸려간다. 이런 세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얼마나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인가. 요즘 같은 때에 이미 오래전 활자화된 것을 읽어 내려가면서 반나절이면 헛다리 짚을 수도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실로 도박에 가깝다.


이런 탄식과 한숨 끝에 떠오르는 질문이 마이클 샌델의 저 질문이다. 독서를 하는 것과 글을 쓰는 건 진정 자유로운 나의 선택인가? 혹시 경제적 이익 등을 이유로 그러한 것은 아닌가?


일단 두 번째 질문은 거의 매번 관계가 없다. 기자직을 떠난 이후 돈 받고 쓰는 글은 손에 꼽힌다. 소액이지만 돈을 받을 수 있는 글도 내가 귀찮아 안 쓴다. 가끔 주변에선 "결국 기자직을 하던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라며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고 한다. 나는 그때마다 그런 저주 좀 하지 말라고 답변한다.


이건 내가 그 직업을 낮게 보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 직군과 인연이 다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 번째 질문은 탈락이다.


다만 첫 번째 질문에선 항상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집어넣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다고 철저하게 믿는 사람이다. 대충 구어체로 쓰자면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 정도가 되겠다.


대학 시절부터 그렇게 배웠다. 언론사에서 버티면서도 속으로 외친 얘기다. 어쩌면 저 프레임에 갇혀서 강박관념처럼 책을 쌓아두고 보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요즘처럼 한가한 시기가 인생에서 언제 또 돌아올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책을 읽지 않을수록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여기저기 쓴 글들을 속이는 죄책감마저 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글쓰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뭔가 대단하고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처럼 언급하는 것을 일종의 '포장 행위'로 봐왔다. 글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세상엔 그보다 더 어렵고 더 힘들면서도 생산적인 일이 얼마든지 있다. 굳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한 범주로 보자면 말하거나 방송하는 사람들은 그런 면이 덜한데 유독 글 쓰는 사람들은 그런 알량한 우월의식을 내비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속으로 야유하곤 했다.


난 그냥 솔직하게 말하듯이 쓰는 게 최고의 글쓰기라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 없다. 그래서인지 현학적이거나 비실용적인 문장 전개를 보고 있으면 '아 이 사람은 이걸 쓰겠다고 얼마나 어깨에 힘을 넣었을까'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경우 그 사람이 글을 쓴 게 아니라 글이 사람을 먹어버린 건데 이게 바로 앞서 제기한 '진정 자유로운 선택인가?' 하는 질문에 탁 걸리는 셈이다.


글이라는 게 더 많이 히려고 쓰는 건 맞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메시지나 진정성을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내가 이런 어휘도 쓰고 문장도 쓸 줄 안다'라고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을 볼 때면 우습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가르치겠다고 근엄하게 "가갸거겨"를 외치는 걸 보면 사기꾼이 사실 멀리 있지 않구나 하고 생각한다.


쓰고 보니 또다시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풀어놓는 것 같은데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니까 어설픈 글쓰기 기술에 돈 쓰고 시간 쓰지 말고 그 시간에 차라리 함께 독서 강박증에라도 빠져 한 줄이라도 더 읽자.


상식적 교양 속에서 독특한 관점을 가진 채 말하듯 간결하게 쓰면 되는 게 글이다. 그렇게 믿기에 오늘도 내일도 같이 '인풋' 하자. 약장수 약 팔듯 이러저러한 것만 지키면 누구든 멋진 글을 쓸 수 있다는 그 속사포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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