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에 가까운 위대한 커뮤니케이션
상대편이 3점 슛을 쐈다. 슛을 방해하려 뻗은 내 팔을 뒤로 하고 공이 솟아올랐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공이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하지만 정점에서 내려오는 공을 보는 순간 슛 각도가 어긋났음을 느낀다. '이때다!'하는 판단이 어디에선가 올라온다.
동시에 내 몸은 우리 팀에서 가장 키가 큰 센터의 근처로 간다. 그가 리바운드를 따낼 경우 공을 빨리 건네받기 위해서다. 이와 동시에 공이 림에서 한 번 튀는 순간 우리 팀에서 가장 발이 빠른 동료가 상대 코트로 뛰어가는 게 감지된다.
뛰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닌데 그가 이미 달려가고 있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안다. 그때 마침 림에서 내려온 공을 우리 팀 센터가 리바운드했다. 공이 내게 전달되는 순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비하고 있던 그 상태로 공을 뒤로 내던졌다. 순식간에 우리가 공격하는 상대팀 코트 쪽으로 보지도 않고 공을 뿌린 것이다.
던진 공을 확인하려 몸을 돌렸다. 우리 팀에서 가장 발이 빠른 그 선수는 아무도 없는 코트에서 손쉽게 레이업 슛으로 득점했다. 내가 직감적으로 던진 공이 멋진 패스가 된 것이다.
한창 농구대회를 나가던 시절에 체험한 일이다. 연습도 아니고 무려 실전에서 경험했다. 놀면서도 이런 플레이를 연습했던 적은 없다. 무엇이 이런 플레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평소 한 자취방에서 자주 먹고 자던 일상생활? 우리 팀 모두가 단순한 팀원 이상의 삶을 공유하는 끈끈함? 내가 한 팀의 살림을 꾸리는 입장에서 해야 했던 팀원들의 성향 파악? 여러 갈래의 질문이 스쳤다.
분명 나는 그날 발 빠른 팀원이 뛰는 것을 보지도 않고 과감하게 등 뒤로 패스했다. 무려 수십 명의 관중들이 있는 경기에서 직감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 '이 패스가 아무도 없는 곳에 그냥 공을 내던진 것이면 어쩌지?' '괜히 실패해서 멋있는 것만 하려다가 실패했다고 야유를 들으면 어쩌지?' '진중함도 없이 막 한다는 창피한 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등등의 질문은 그날 판단 과정에서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어느 순간 흥분이 잦아들었을 때도 사실 이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지 '농구광'으로 보낸 내 20대의 페이지 한쪽에 나만의 명장면으로 남아 진한 추억의 향기를 내뿜었다. 우선은 '동물적 감각'이라고 밀봉해 추억했다.
20대 중반 어느 날 용산의 모 클럽에서 한창 흔들고 나와 미군기지 담벼락을 봤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제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나마 좋아했던 독서부터 왕성하게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삶을 꾸려가는 가운데 여러 책을 접하면서 그날의 저 패스가 이따금 생각났다. 내가 그때 느낀 것은 결국 직관력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이 밀려왔다. 그것은 동고동락한 일상생활도 아니고 삶을 공유한 끈끈함도 아니며 팀원의 성향 파악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모든 것'이었다.
보고 듣고 체험한 모든 게 인간을 구성한다. 그러한 체득 속에서 앞을 전망하려는 일종의 무의식이 돌출한다. 이게 현시점에서의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 또한 삶의 어느 시점에 가서는 또 다른 답변으로 대체될 수 있겠으나 지금은 확실히 그렇다.
그날의 플레이는 결국 팀원과 주고받았던 모든 언어적 소통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과 몸짓까지도 녹아 나왔던 것이다. 어디 저 플레이 하나뿐이었을까. 아마도 알게 모르게 함께하거나 나눈 일상생활 소통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에 속하는 게 확실하다면 '동물적 감각'이란 것은 메시지를 주고받은 모든 상호 교환 속에서 경험적으로 태어난 산물일 게다.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우리 집 강아지와 대화할 수 없지만 우리는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 가만히 보면 강아지들의 표정도 다양한데 큰 틀에서의 의사소통은 그걸로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강아지 역시 내가 하는 말들은 한국말이라는 전제하에 알아듣는 눈치다. 어쩌면 말할 때의 행동이 힌트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동물 인간과 동물 강아지가 감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셈인데 각자의 '종'이 살아온 역사를 돌아보면 저 아득함이 연결되는 실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명제가 만고불변의 진리라면 나는 또 다른 종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우리네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의사소통이라 생각한다.
여러 종은 지구라는 위대한 별에서 나름의 언어로 유구한 세월을 버텨온 개체들이다. 그런 각자들이 동물적 감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면은 평화와 화합 그 자체다. 이것은 구글 번역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근접하기 힘든 범주일 것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인간끼리도 오해와 불협화음이 번진다. 그런데 전혀 다른 개체가 동물적 감각으로 소통하는 건 신기함 그 자체다. 특히 그러한 종들의 대화가 어떠한 화합에 이른다는 건 확률적으로 기적에 가깝다. 이 모든 건 축적된 소통과 경험이 만든다.
그날 나는 등 뒤로 공을 던지며 팀원들과 경험했던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담았던 것이다. 동물적 감각은 이토록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