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차 큰 커브'가 날아오는 순간
발품 팔아서 장바구니에 있는 책 중 무려 5권을 중고 서점에서 샀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거의 백 년 만에 강남 한복판에서 1만 2000원짜리 삼계탕을 하나 때렸다.
배도 따뜻하고 맘먹고 강남까지 나왔는데 어디 아까워서 곧장 9호선에 몸을 실을 수 있는가. 바로 특검에 나가 있는 옛 후배 기자한테 전화해 쫑알쫑알 만담을 나눴다.
후배가 "오후 4시에 마감 끝나면 선릉에서 보죠"라고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계산해보니 만남이 끝났을 무렵 지옥철을 타야 할 처지였다. 작은 목소리로 "좋은데 그건 좀 힘들어. 굳이 지옥철을 자처해서 타고 싶진 않거든"이라고 얼버무렸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그저께 거의 반년 만에 세차했는데 마침 차를 지붕 있는 입주자 주차장이 아닌 집 앞 길바닥에 세워두고 나온 참이었다.
자연산 자동 세차를 한 번 더 돌린 셈인데 '아무렴 어떤가. 오늘 읽고 싶은 책과 삼계탕을 흡수해 이렇게 즐거운데'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곤 감지 않은 머리를 후드티 하나로 가린 채 강남 한복판을 마음만은 풍요로운 이방인처럼 돌아다녔다.
살다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상쾌한 날이 있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시작하는 그런 날 말이다. 특히 나 같이 '만성 아침 저기압'에 시달리는 사람한테는 눈뜨자마자 기분 좋은 날이 로또 5000원에 당첨될 정도의 확률이다. 끊을 만하면 어이없게 당첨돼 생각나는 그런 거리감과 같다.
아침부터 상쾌하면 그 전날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런 기분을 자주 느끼려 꼭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딱히 개연성을 찾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아직도 기억나는 21살 어느 날이 있다. 그날도 이상하게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높은 고개를 오르며 등교했는데 함께 걷는 친구 2명과 god의 촛불 하나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전날 뭘 했지? 그냥 농구하고 맥주 먹고 잤다. 그게 전부였다. 심지어 입대를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이었다. 이렇게 가끔은 나조차도 통제가 안 되는 내적 체험을 할 때가 있다. 완만한 고개를 오르듯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계단 한 칸을 오르듯 갑자기 '딱' 하고 무언가 태도나 상태가 변하는 것이다.
쓰고 나니 생각나는데 썼던 글을 모두 혼자만의 공간으로 치워버린 경험이 있다. 4년 가까이 운영한 네이버 블로그의 글들을 어느 날 모두 비공개로 해버렸다. 나름 파워블로거에도 선정되고 이를 발판으로 칼럼 기고도 했으며 다음뷰에서는 자기네 블로그가 아닌데도 우수 블로그로 뽑아 돈을 주기도 했다. 몇 번은 업체에서 제품을 받아 리뷰도 썼다.
그런데 어느 날인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데 몇 권의 책을 연달아 읽고 나서 곧장 노트북을 켜 블로그의 모든 글을 비공개로 전환해버렸다. 짐작건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막 읽은 날로 기억한다. 우주의 아득함과 인류의 원초성에 압도돼 '이따위 글들 창피해'라고 했을까? 그러한 책을 읽은 것과 나름 열심히 했던 블로그의 모든 글을 닫아버린 것에는 사실 전혀 연관성이 없다. 그냥 갑자기 그런 일을 벌였으며 지금도 딱히 후회되지는 않는다.
늘 어떠한 결심이나 방향 전환은 완만한 게 아닌 '딱'하고 벌어지는 것이란 걸 그때 알았다. 나만 그런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우리 아버지도 어느 순간 '딱'하고 변해버렸다. 아버지는 고교 싸움짱 출신에 육군 GOP에서 근무했으며 나보다 키도 크고 선천적인 체력이 좋다. 나랑 공통점은 GOP에서 근무했다는 점 말고는 거의 없다. 물론 내가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종목 운동은 더 잘했다는 깨알 자랑을 내가 쓰는 글이니까 덧붙인다.
어쨌든 아버지는 빈 차 털던 젊은이들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다가 맨발로 뛰어내려가 잡은 적도 있다. 그게 40대 후반이었다. 그보다 더 내가 어렸을 때는 조금 쓰기 멋쩍은 일이기도 하지만 동네에서 몇 번 정의감에 사로잡혀 주먹질 아닌 주먹질을 해 경찰차가 오기도 했다. 뭐 그것도 처음이나 엉엉 울며 놀랬다. 나중에는 일단 아버지가 상대와 드잡이를 멈춘 뒤 빨리 경찰차에 타는 게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괜히 번쩍이는 경찰차에 압도돼 울 필요가 없었다. 코흘리개 꼬맹이는 그렇게 경험으로 차분히 사태를 바라보는 감식안을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리들은 1학년> 교과서를 펼치기 전부터 배웠다.
그런데 이랬던 상남자 아버지가 지금은 거의 아주머니나 마찬가지다. "00시에 역에 도착하는데 좀 데리러 나와"라는 말이 나오면 거의 진돗개 하나가 발령될 정도로 혼자 사는 내 집에 비상 상황이 걸린다. 식탁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며 밀린 설거지를 순차적으로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일을 하는 것보다 더한 고통의 잔소리가 날아온다. 언제나 느끼는 건데 듣기 싫은 말의 힘은 깨진 유리 파편이 살에 박히는 것보다 엄청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과업을 해냈어도 아버지를 데리러 나가는 순간 현관에 쌓여있는 분리수거를 보면 인간 기억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되는 셈이다. 정말이지 내 눈엔 보이지 않던 게 아버지 눈엔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인데 사람의 변화는 이토록 급격하면서도 극단적인 부산물을 몰고 온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 준비를 마치고 아버지를 만나면 어김없이 첫 질문이 날아온다. "내일 아침거리 있냐?"로 시작하는 데 없으면 바로 집 앞 마트행이다. 그곳에서 온갖 채소와 육수 내는 재료들이 바구니에 담긴다. 가만 보고 있으면 어떨 때는 내가 알던 아버지가 저 아버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머리론 도저히 저 초록빛 채소들의 조합이 어떤 걸 만들어낼지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알던 아버지도 과거엔 별로 다를 것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마저도 이제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젯밤에 내가 뻗어버리는 동안 아버지 혼자 장 보고 요리했다. 나는 "밤에 여의도 나가 봐야 하는데 그때 내가 사올게"라고 해놓고선 뉴스룸 보다가 잠들었다. 그사이 아버지는 밥 지어두고 떡국 육수 우려 놓고 거실 바닥에서 식모처럼 잤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또 벌어졌다. 남성 호르몬 보충제라도 사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하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급격한 기분 변화와 하루아침에 애지중지한 글을 쓰레기통에 넣은 것과 아버지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오후 내내 돌아보니 정신이 다 노곤했다. 가끔은 이렇게 '낙차 큰 커브' 같은 궤적이 삶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다. 그래서 맨날 주변에 "그냥 대충 살자" "카르페디엠"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데 이것도 어떨 때는 변화무쌍한 삶의 불안함을 대충 눙치려는 방어 심리인가 싶다.
또 언제 '딱'하는 순간이 올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번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사는 거 자체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처연한 자세로 지갑에 있는 5000원 당첨 로또나 바꾸러 갈 계획이다.
설마 오늘 바꾼 로또 1등이 이제껏 경험한 '딱'의 절정? 또다시 머릿속에 '내가 1등이 되면 말이야'하고 계획들이 번진다. 그래도 이것 자체가 기분 좋은 작은 '딱'이니 오늘도 노곤한 하루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