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의 홀로코스트

다름과 틀림 사이의 기술 발전

by 반동희

미디어와 스마트폰의 발전은 짙은 명암을 낳았다. 모두가 정보를 손쉽게 얻어 세상에 비밀이 없을 것처럼 만들었지만 '가짜 뉴스' 등 어떤 이들의 확증편향을 감싸는 도구도 됐다.


기술의 발전은 귀를 닫은 이들에게 더 강한 마취제다. 이들은 새로운 가치의 끌림보다는 이전 세계의 확증에 이를 이용한다.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들이 많아질 거다.


사실 신기술의 파괴력은 존 그레이라는 교수가 언급한 바 있다. 그는 2010년 펴낸 저서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에서 "학살은 기독교만큼이나 오래된 만행이지만 철도, 통신, 독가스 등이 없었다면 홀로코스트도 없었을 것이다. 독재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현대적인 교통 통신 수단이 없었다면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이 그런 수용소를 짓고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 최악의 범죄들은 현대 기술 덕분에 생길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다소 극단적인 예가 될수도 있는데 한 인간을 능동적 사고가 불가능하도록 세뇌하는 건 정신적 홀로코스트라는 게 내 생각다.


국정농단 사태가 알려진 초기엔 촛불만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런데 규탄의 시간이 지체될수록 친박 단체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들을 무장시킨 건 카톡과 밴드에서 울려대는 확증편향적 메시지들이었다.


어느새 그들에게 팩트 통로는 출처불명의 급조된 찌라시와 주변인의 카더라가 됐다. 극우 정치인들은 '산업화 신화'로 대변되는 이들의 정신적 홀로코스트를 묵인하며 이를 조금씩 건드려줬을 뿐이다.


이 사태가 어떻게 일단락될는지는 잘 모. 요즘은 피로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분열이 결국은 한 세대의 종말이 있지 않고서는 결코 봉합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은 폭력적인 주장일 수 있지만 '다름'과 '틀림'이라는 너무도 먼 개념 사이에 미디어와 스마트폰 발전의 단면이 장애물처럼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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