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평생 시골에 살면서 배움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지혜롭다. 그들의 삶은 그 자체가 경험의 축적이자 산물이다. 정직하고 청빈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는 누가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살을 덧붙이긴 했으나 내가 내린 이러한 해석의 토대는 일찌감치 김훈 소설가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썼다.
난 그의 글을 읽으며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지만 한평생 정당하고 충실하며 떳떳하게 살았던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외할아버지의 삶은 결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 전체는 배울 점이 많았다.
이를테면 새벽에 일어나 노동의 현장으로 어김없이 갔다. 주어진 여건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의무를 피하지 않았다. 몸이 망가진 노년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늘 긍정적으로 삶에 임했다. 기역자 하나 몰랐어도 외할아버지는 칠남매 밥을 굶기지 않았다. 단언컨대 이상향에 갇혀 현실을 불평불만하거나 버텨내야 하는 삶을 외할아버지는 피한 적이 없다.
"여러분, 학습에 들어가기 전에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이 시간부터 여러분들 자신이 무식하다는 생각을 싹 버리십시오. 여러분들은 절대로 무식하지 않습니다. 세상사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다 알고,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아는 여러분들이 어찌 무식하단 말입니까! 사람의 유식이나 무식은 학교 공부를 배우고 못 배우고의 차이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 공부를 제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그 배움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나쁜 쪽으로 쓰면 그 인간이야말로 상무식꾼인 겁니다. 여러분들을 무식하다고 업신여기고 무시하면서 사람대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그 설배운 인종들이었습니다."
내가 요즘 다시 읽는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구절이다. 세상사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알며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안다는 이 말에는 삶의 경험과 현장에 대한 경의가 녹아있다. 초등학교 바른생활 수업시간에 배웠던 모든 것들은 사실 두고두고 상기해야 할 삶의 기본 뼈대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석은 요즘에도 유효한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나는 공중파 방송 현장 PD로 잠시 일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소도시와 시골 마을을 찾아다녔다. 대부분 내비게이션에 읍·면·리로 찍혔는데 쭉쭉 늘어나는 주소의 세부사항만큼이나 그곳 사람들의 삶도 구체적이었다. 그들 대다수가 가진 정직한 삶과 순수성을 보면서 소로우가 <월든>에서 얘기했던 게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잠겼다. 개인으로 담보된 도시의 이해타산과 약삭빠름은 그곳에 없어 보였다. 배우고 안다는 것의 정의 역시 전혀 다른 삶의 양식 속에서 이질적이었다.
"카메라 밖을 자주 봐야 혀. 그걸로 보면 보는 것만 본다니께. 젊은 양반 힘든 일 하는 건 아는디, 이 늙은이 말도 새겨듣고 잘 생각혀봐."
70이 훌쩍 넘은 한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휴대폰 카메라로 이것저것 기록하는 내게 오미자 차와 함께 들려온 말이다. 노인은 오래된 도서관과 같다고 누가 그랬던가. 세상사 옳고 그름과 바른 삶은 그곳에서도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유효했다. 축적된 지식수준 차이가 엿보인 게 아니라 양식이 달랐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한다.
오후쯤 되면 요즘의 번민을 한 번씩 곱씹는다. 배우고 잘났다는 이들 중 일부는 어떠한가. 온갖 계산적인 삶의 방식으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흔들었다. 오죽하면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학교 입학식에서 총장이 '지금 이 순간부터 이곳 대학생이란 특권의식부터 내던지라'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졸업 후 사회에서 엇나간 그들 선배들의 배움은 무엇이었나.
어느 외국 학자가 "한국은 미래 사회에서 전혀 쓸모없는 지식을 배우는데 학교 수업 대부분을 할애한다"라고 지적했는데 그 말이 생각나는 한편 별로 반박할 말도 없었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고 순환할 뿐이라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배운다는 것과 안다는 것 또한 공허한 현상이다. 세상이 온통 의문투성이에 돌발적인 성격 가득한 개체다. 그런데 그 안에서 누가 누군가를 배운 이라고 평가하며 추켜세워진 그 누군가 안다는 알량한 특권의식을 갖는단 말인가. 게다가 인간은 지구상 어느 동식물보다도 특별하지 않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요즘 자꾸 생각난다. 사전적인 뜻을 찾아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알면 알수록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게 많은 것을 깨달은 이를 지칭하는 말일 테다.
배우는 것과 안다는 것을 추구하면서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 태도는 그래서 더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알려고 할수록 점점 모르겠다는 몇몇 지식인들의 말이 이제는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