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뒤집어졌다.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청년이 되었을 이들이다. 그마저도 9명은 '미수습자'로 불린다. 싸늘한 주검조차 찾지 못한 해당 유가족은 지금도 울부짖고 있다. 그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 사고 당일로 3년째 멈춰있다.
시간을 돌려보자. 참사는 왜 일어났는가? 개인의 문제가 있었나? 아니다. 전부 사회 집단의 문제였다. 사회 집단이 만든 폭력이자 국가가 키운 참사였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일이 사회 집단과 국가 기능 마비로 터졌다. 학교, 해운사, 정부 모두 사회와 국가 집단이다. 사회 집단과 개인은 어떤 의미의 관계를 갖나. 오늘날 사회와 국가는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가. 그렇다는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만약 피해 학교가 수학여행지와 교통선을 다른 기준으로 선정했다면? 해운사가 똑바로 규정을 준수해 일했다면? 정부가 국민 보호라는 원칙을 엄격히 지켰더라면? 모두 가정이다. 하지만 하나만 가정대로 됐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다. 우연의 연속이지만 우연이지 않을 수 있었던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참사 이후 과정 중 하나만 집중해보자. 여기선 그 어떤 희극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애석하다. 애초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벌어졌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그래서 참사 이후 과정에선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다. 그 어떤 구조 활동이나 수습도 희망과 연결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배를 들어 올렸으니 제대로 수습되고 있다고?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교훈을 얻어 달라질 수 있다고? 당시 대응 결정권자들과 해운사 관계자들이 처벌에 처했으니 원칙이 바로 섰다고?
아니다.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원래 일어나서도 안 되며 있을 수도 없던 일이 일어났으니 사고 수습은 그냥 사고 수습일 뿐이다. 그렇다고 사회 집단과 국가가 앗아간 생명이 돌아올 일은 없다. 금요일에 돌아오라는 소리는 애써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일 뿐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은 이길 수 없으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워버린 배와 사라진 생명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 그 자체다.
사고 이후 그 어떤 과정도 국가와 사회 집단의 미래와 이을 수 없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 뒤늦게 정상 절차를 밟고 있을 뿐이다. 여기선 희망도 발전도 진보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미수습자 확보에 기뻐할 필요도 안도할 이유도 없다. 그저 슬프고 비통하고 원망스러울 뿐이다.
사회 집단과 국가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국가의 3요소라는 국민, 주권, 영토의 진짜 뜻은 무엇인가. 국민은 여전히 국가에 종속돼 있지 않은가. 21세기 현대 민주주의 국가 역시 '근대 국가'에서 명칭만 바뀌었을 뿐이지 여전히 국민을 착취해 존재하고 있지는 않나.
침몰한 배는 3년째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배가 물 위로 떠올라 참혹한 바닥을 드러낸 지금도 이 질문은 현장을 맴돈다. 답은 여전히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