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어른'과 싸우는 어른들, 건투를 빈다

그래 당신도 참 힘들겠구나

by 반동희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우선 내 머리론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는 게 어른이다. 그러니까 이런 글도 쓰는 것일 게다.


내 상식으로는 어른의 정의부터가 모호하다. 몸과 키만 큰 애어른이 수두룩하다. 나도 물론 그렇다. 주변을 보면 볼수록 단순히 2차 성징만 끝난 채 사고력은 애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을 자주 본다. 가만 보면 어른 누구나 어떤 면에선 아이와 똑같은 사고를 한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는 주제에 스포츠 선수 피규어를 지르는 철수가 이런 어른일 것이다. 다음 달 카드값 대책도 없으면서 신고 싶은 하이힐을 사는 영희도 대표적인 예다. 그러니까 어른의 정의는 둘째고 아예 완벽한 어른이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20대 30대를 지나면서 막상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지금 나이보다 한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역시 완전한 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한다. 과거엔 커 보이고 저 정도면 진짜 어른이라고 믿었던 나이인데 막상 본인이 그 나이가 되어보면 생경하다.


여전히 나이라는 숫자만 달라졌을 뿐 노는 거 좋아하고 일 하는 거 싫어하며 철은커녕 생각도 어릴 적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항상 "왕년에"를 달고 사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달라진 건 매주 사던 만화책이 로또로 바뀌거나 학교 매점에서 매일 사 먹던 닭다리가 치맥으로 플러스됐을 뿐이다. 점점 "철드는 순간 죽는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셈이다.


그래도 어른과 아이 사이에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그게 바로 '책임'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다. 사회가 정한 나이를 넘어 어른 취급을 받는 순간 숟가락 뜨는 것부터가 책임으로 묶인다. 나는 아니지만 이건 사회가 정한 약속이므로 어찌할 방도가 없다.


이건 내가 앞에서 실컷 떠든 '내적 아이'와 이별을 강요받는 것인데 그래서 어른은 서럽다. 어른이 아닌데도 어른인 척 연기해야 해서 문득 혼자 있고 싶거나 울컥하는 것이다. 눈물 많은 어른일수록 저 한쪽 구석에 마음속 아이가 커다란 경우를 많이 봤다.


사회가 나이로 어른을 규정하니까 그에 따른 책임은 세금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 법도다. 이는 법과 원칙과 정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개인에게 강요된다. 예전엔 사회 일부 계층에게 이를 헐겁게 적용해 그들이 마음속 아이를 마음껏 부려 하고 싶은 대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걸 눈감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도 수감 번호 503이 되는 시대가 되면서 어른의 책임이란 구속이 더욱 강해지고 넓어지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어른을 옭아매는 이 책임이란 뭘까. 요즘 드는 생각으로는 모든 언어와 비언어적인 행위가 곧바로 어른의 책임 그 자체 같다. 문자 하나, 전화 한 통, 눈빛과 뉘앙스 한 단면 등등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범주의 모든 것이 어른에겐 책임으로 돌아온다. 모든 방식의 소통 행위가 메시지 전달로 진화한다. 그리고 그게 결국 사회가 돌아가는 가장 핵심적인 기초 단위가 되는 동시에 어른들의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되는데 이 커뮤니케이션이 결국은 사회 속 어른을 수놓는 가장 작은 단위가 아닐까. 어른의 책임을 조이고 그 조여진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으로 만드는 셈이다. 그래서 책임에 지치고 힘든 어른들은 눈물이 늘어난다. 끊임없이 내적 아이와 싸우고 우당탕탕하며 살아가니까 지쳐서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나이가 억지로 어른으로 규정되면서 오히려 책임이 먼저 늘어난다. 어른이니까 집과 차가 있어야 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한다. 어른이니까 연봉을 얼마 이상 받아야 하고 어른이니까 부모도 챙겨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애어른이거나 아예 아이 취급을 받는다.


안 그래도 나이 먹었음에도 전과 다를 것 없다고 느끼는 '사회의 어른들'은 내적 아이를 감추고 순응한 또 다른 사회의 어른들한테 지적당하는 것이다. 지적당한 어른은 이런 비판이 없어도 혼자 내적 아이와 싸우며 어른 연기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언뜻 비슷해 보이는 부류들의 지적이 이어지면 더욱 울고 싶어 지는 셈이다. "너네는 뭐 그리 잘났는데?" "너네는 이 나이 안 먹을 것 같냐?" "너네도 크게 다를 거 없잖아" 등등 이런 마음속 말들은 동의를 구하는 동시에 지적질을 울트라맨처럼 '반사'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걸 인지하며 법의 테두리를 심하게 벗어나지만 않으면 적절한 '내적 아이'를 내보이는 어른을 눈감아 줄 필요도 있다. 이건 내 부모가 그러한 행동을 해도 그렇고 내 직장 상사가 그런 면을 감추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조금은 애어른 같은 면을 보일 때 관대해지거나 못 본 척 해도 좋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을 들킬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의 분석은 사회의 어른을 거부하는 뜻에서 한 게 아니다. 가슴이 시키는지 아니면 사회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시키는 건지 짚어 보고는 살자는 의미다. 피규어 지르고 하이힐 뽑고 로또에 치맥 중독자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대충 눈치로 이해한다는 걸 밝힌다.


적어도 나는 '그래 당신도 참 힘들겠구나'하며 토닥여줄 수 있다. 가진 것 없지만 마음만은 풍부하다는 개인적인 유세다. 이 세상 모든 애어른들은 내가 비슷한 입장이라서 잘 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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