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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06. 2017

'우물 안 개구리' 구기종목, 이대로 괜찮나?

야구·축구·농구·배구 '4대 종목' 국제무대 부진

리그 흥행과 국제무대 사이에서 '타겟팅' 필요


지난달 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대만전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은 11-8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선수단 누구 하나 환하게 웃지 못했다. 관중들은 아쉬움이 가득 담긴 잔잔한 박수로 선수들의 인사에 화답했다. 1만 2029명의 관중은 마치 10명도 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떴다.


예상할 수 없던 충격이었다. 언론은 '참사'라며 한국 야구의 미래를 장밋빛 과거와 비교해 비판했다. 아무리 '사상 최약체 야구대표팀'이라는 평가가 붙었더라도 1라운드에서 짐을 쌀 것으로 예상한 목소리는 없었다. 게다가 사상 처음으로 홈에서 열린 WBC였다. 그러나 한국 야구대표팀은 이스라엘(1-2)과 네덜란드(0-5)에 연이어 패하면서 2013 WBC에 이어 두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했다. 야구가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상징성과 2006 WBC 3위,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 2009 WBC 준우승, 2010 아시안게임 우승 등으로 쾌속 질주했던 야구대표팀의 영광이 과거로 박제되는 순간이었다.


가장 내셔널리즘이 완숙한 축구도 최근 삐걱거렸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8 러시아 월드컵 티켓을 확보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중국 창사에서 열린 중국과의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전에서 0-1로 패했다. 축구대표팀이 중국에 진 것은 7년 만이다. 특히 이날 전까지 18승 12 무 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공한증'(恐韓症)이라는 말까지 만들었던 터라 더욱 충격적인 결과였다. 대외 정치적인 상황까지 맞물려 이 경기는 '사드 매치'라는 말이 붙었던 경기다. 그런 중요한 경기에서 패하면서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농구와 배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남자 농구는 20년째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남자 배구도 16년째 올림픽과 인연이 없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상위권에 올라 있지만 그 이상 국제무대만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는 추세다. 남자 농구와 남자 배구 모두 겨울 스포츠 흥행을 담당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판 앞에선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처지다. 중요한 건 두 종목 모두 여자 선수들의 프로리그가 활성화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자 농구와 배구 대표팀 역시 최근 국제무대에서의 하락세가 뚜렷하다. 여자 농구대표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2004 아테네올림픽(12위)과 2008 베이징올림픽(8위) 부진에 이어 2012 런던올림픽과 2016 리우 올림픽은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국제농구연맹(FIBA)이 개최하는 농구월드컵(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최근 하위권이다.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로 꼽히는 김연경(터키 페네르바흐체 SK)이 있는 한국 여자 배구표팀도 오히려 국제 대회 성적은 고전 중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을 딛고 2012 런던올림픽 4위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나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는 8강 진출에서 만족해야 했다. 세계 배구선수권대회 역시 2006년과 2010년 연속으로 13위에 그치다가 2014년에는 출전 자격조차 획득하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선 늘 1~2위를 오가지만 더 큰 국제무대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구기 종목들이 국제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로는 다양한 해석이 공존한다. 지나친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선수들의 경쟁력을 하락시킨다는 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요인이다. 4대 구기 종목 모두 외국인 선수가 없던 시절에 국제무대 경쟁력이 좋았으니 언뜻 설득력이 있는 분석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번 더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시각 역시 허점이 있다. 직접 뛰는 선수들은 오히려 국내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상대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타 국가대표를 만났을 때 긴장하거나 위축되는 일이 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인 선수가 국내 무대에서 뛰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량이 하락했다는 주장은 표면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흔히 나오는 대표팀 전임 감독제 문제는 어떨까? 월드컵이 있는 축구를 제외하면 야구, 농구, 배구 모두 국가대표 전임 감독제가 허술해 연속성 있는 팀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번 WBC를 앞두고 야구대표팀의 김인식 감독은 다른 감독 후보군이 고사해 이번에도 억지춘향 격으로 팀을 맡아야 했다. 김인식 감독은 급하게 팀을 꾸리고 코치진을 선임한 뒤 속전속결로 선수들을 점검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 몇몇을 대표팀에 넣어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일각에선 급조된 감독이 성적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모두 야구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외부 요인이다.


이제 막 전임 감독제를 도입한 농구와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는 배구는 더 불안하다. 두 종목이 야구와 축구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인데 그래서 더 대표팀 전임 감독제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중이다. 예산 문제부터 시작해 선수단 규모나 종목 시장성을 놓고 봤을 때 전임 감독제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느냐 하는 우려도 나온다. 내셔널리즘이 약한 가운데 국제무대 성적마저 나오지 않고 있으니 전임 감독제에 대한 주의 환기가 더욱 떨어지는 것이다.


운동을 시키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주목하는 목소리도 있다. 삶의 질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직업 탐색으로써 운동을 시키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사회 체육과 클럽 활동이 강조되는 가운데 어린 시절부터 스타 선수를 보며 꼭 프로 선수가 되고야 말겠다고 '올인'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다. 이는 선진국형 생활체육 활성화 정책이 닻을 올리면서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종합해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과연 모든 구기 종목을 잘할 수 있을까? 혹은 꼭 그래야만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4대 구기 종목 활성화가 국내 리그 흥행인지 아니면 국제무대 성적 달성인지 규정하는 게 첫 번째로 보인다. 이를 위해 각 종목 특성 분석과 국제무대에서의 냉정한 위치 파악에 따른 흥행 '타겟팅'이 선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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